시코쿠 88개소 순례

모처럼 선라이즈를 타고 시코쿠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당연히 시코쿠 88개소 순례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시코쿠 순례에 대해 설명을.

시코쿠 88개소 순례는, 시코쿠의 해안 쪽에 있는, 홍법대사 쿠카이와 인연이 싶은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것을 말합니다.
(쿠카이가 사누키-카가와현-출신. 아마 88곳 대부분 진언종이겠죠?)
시코쿠 전역을 쿠카이와 함께 순례한 후 다 돌고 나면 고야산에 가서 보고를 한다는 설정인데요, 쿠카이가 살아있을 시절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에도시대 때 무슨무슨 순례라는 식으로 일반 백성들의 여행이 유행하면서 같이 생긴 것이라 합니다.

1부터 88번까지 시계방향으로 한 번에 다 도는 식順打ち,
88번부터 1번까지 반시계방향으로 거꾸로 도는 식逆打ち,
아니면 이번의 저처럼 중간중간 마음대로 끊어다니는 식区切り打ち등 다니는 법은 다양하지만 특히 거꾸로 도는 방식이 순서대로 도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에 이 쪽이 더 효과?가 있다고 하고,
특히 4년에 한 번, 거꾸로 돌면 순서대로 도는 것보다 세 배의 복을 받는 해가 돌아온다는 설정입니다. (올해가 그 4년에 한 번인 해)

제가 왜 이걸 하느냐-는 물론 고슈인 모으는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고슈인을 모르던 시절에도 이 시코쿠 순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거든요.
불꽃의 미라쥬에도 나왔고(…), 반도 마사코의 사국을 영화로 봤을 때, 특히 죽은 사람의 나이만큼 거꾸로 돌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상은 거꾸로 돌면 더 복이 온다는 거였네요.
(그래서 영화 개봉 당시 시코쿠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작가가 아마 고치현 출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튼 대학생 때부터 저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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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순례와 다른 것 중 하나가 규정 복장이 있다는 것.
쿠카이와 함께 한다는 설정이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하얀 삿갓, 하얀 옷, 가사, 지팡이, 염주, 향 등을 넣는 크로스백(..)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삿갓이랑 지팡이를 매번 여행가방에 실을 순 없으니 어쩔까 고민했는데, 구글맵 등에 찍힌 사진으로 볼 때 이걸 다 지키는 사람은 없어보여서 염주랑 선향만 챙겨갔어요.
원래는 집에 있는 수많은 원석 팔찌 중 하나를 가져가려 했지만, 마침 4월 초에 있었던 불교박람회에서 싸게 산 염주가 있어서 기분 낼 겸 가져갔습니다. (나중에 해인사 갈 때도 하고 갔음)

2000원 주고 샀는데 싼 게 비지떡인지 금방 늘어나고 팔에 색 빠지고.. 구슬도 108이 아니라 105개였음
이번에 알았는데 일본은 종파에 따라 염주 모양도 잡는 방식도 다르다고… 우리나라에선 108배할 때 쓰는 게 기본인가..?

실제로 돌아보니까 저 복장 다 하는 사람은 20~30% 정도더라구요.
게다가 저처럼 ‘순례라면 걸어서 해야지!’가 아니라 차 대절해서 다니는 그룹투어가 대부분(특히 산 위)이더라구요. 한 60~70%는 그룹이어서 관광객들이 참배하는 동안 가이드가 미리 걷어둔 납경첩들을 사무소에 가져가는 풍경을 종종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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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경첩도 다른데요,
일단 88개소+고야산에 가야하니까 페이지 수가 많아서, 제가 산 납경첩은 얇은 갱지?로 만들었더군요.
일반 고슈인첩처럼 두 겹으로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뒷페이지가 먹이 묻어날 거라 그런지 사이에 끼우라고 흰 종이가 같이 들어가있었고.
사실 표지 예뻐서 사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 (링크)
이 쪽은 종이도 일반 고슈인첩이랑 똑같아서 두껍고 쟈바라식이고 사찰명도 안 적혀있어서 패스한.고슈인의 형태도 달랐습니다. 날자 안 써주고, 뭔가 절별로 컬러 스탬프를 하나씩 더 찍어주던데 이건 작년이 쿠카이 탄생 1250주년이라 한정 스탬프를 찍어준 건가…?
또 고슈인만 써주는 게 아니라 씰을 세 종류 같이 주었는데(왼쪽), 부처님 그려진 흰 종이는 원래 주는 거고, 네모난 씰은 쿠카이 탄생 1250주년으로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배포하는, 쿠카이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라고. 범자 그려진 스티커는 ‘올해 거꾸로 돌면 복이 세 배니까 카가와현부터 시작하세요’라는 의미로 카가와현에 있는 사찰만 준다는 스티커였습니다.

또 납경첩이 아니라 흰 옷에 날인을 받기도 합니다. 원래 납경첩은 일괄 300엔, 옷에는 일괄 500엔이었는데 올해 4월부터 200엔씩 올랐더군요. 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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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참배 방식도 달랐어요.
88개소에 속한 절은 본당 외에도 ‘대사당’이 있어서 이 두 군데 다 인사를 해야한다고 합니다.
인사하면서 향이랑 양초도 올려야하고(이건 일반 절들도 하라는 곳이 많지만). 이건 미리 챙겨가도 된다고 하길래 집에 남아도는 향을 챙겨갔고요(가면서 좀 많이 부러뜨렸지만),또 인사하기 전에 종이에 참배일과, 자신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뒷면에 소원을 적어서 제출해야 하고(사진 오른쪽 흰 종이),
참배한 다음 경문을 읊는 것도 있는데 이것도 미리 책자?를 사가긴 했습니다(사진 가운데). 너무 길어서 대충했지만요.. 물론 히라가나로 루비가 다 붙어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80~86번 사찰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to be continued…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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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것보다 뭔가 과정이 더 많네요.. 이렇게 불교도도 아니고 신자도 아닌 사람의 취미생활로 하기엔 너무 어려워 보입니다 @_@
저는 일본 예능 에서 오오이즈미 요가 시코쿠 88 사찰 앞에서 인증(말 그대로 일주문 앞에서 인증샷만 찍는)을 2박 3일로 두 차례 하는 걸로 봐서 깊게 생각 못했는데.. 심지어 완결이 고야산이라니!
나중에 고야산 정도만 들려보겠습니다(…)
삼끼님의 순례기를 기다리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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