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빅과 초파리 애벌레에 대한 추억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 리뷰를 쓸까 고민하던 참에 문득 기생충이 떠오르더군요.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3부에 ‘아프리카는 기생충의 보고’라는 묘사가 나옵니다(안 나와).
하여간, CIEL 19권에서도 기생충 드립이 떴고 해서, 어디 기생충에 대한 포스팅을 해볼까 해서 올립니다.

2003년(…쿨럭)에 기생충학 실습 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만(관련 링크 : 1 2), 사실 제 안의 기생충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 이야기들이 아니에요. 이 때는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었잖아요.
기생충에 대한 트라우마는 대학생 이전에 기인합니다.


처음으로 기생충이란 것을 본 것이, 어릴 적(인천 만수동 살던 시절이니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옆집 사는 아이랑 그 집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데, 그 친구가 개한테 코코아 가루를 먹이면 똥꼬에서 ‘해’가 나온다면서 보여준 적이 있었어요. 정말로 나왔습니다 ㅡ_ㅡ;
나 : “왜 이름이 해지?”
친구 : “글쎄 햇님모양처럼 동글동글 마니까?”
지금 생각하면 대체 뭔 메카니즘인지 모르겠는데.. 그 이전에 해가 아니라 회충입니다만.. 그 때 처음으로 기생충이라는 걸 봤네요.

그 이후 기생충이라는 것하고는 인연을 끊고 살다가,


고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아마 2학년 때일 거라 생각하는데, 저희 담임이기도 했던 생물 선생님은 참 적극적인 분이셨어요.
학교 화단에 심는 식물(야생화)의 종류를 장악하다시피 했고,
학생 식당에 나오고 남는 자두랑 포도를 얻어다가 초파리를 기르셨습니다.
초파리! 학교 성격이 성격인지라 과학실 장비가 꽤 좋은 곳이긴 했지만, 초파리를 길러서 혼자 돌연변이라든가 보는 건가.. 싶었던 어느날, 이 선생님께서 2학년 전체에게 미션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각자 비ㅇ빅을 먹고 남은 나무 막대기를 가져올 것!’


해부침 만드는 데 쓰실 거라더군요. 일일이 돈 주고 사기 아까우니까, 동그란 나무막대기에다 쇠로 된 침을 박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 때 침을 본드로 고정하는데, 플라스틱 막대는 플라스틱이 녹으니까 나무로 된 동그란 막대기를 가져와야 하고, 이 조건에 맞는 것이 비비ㅇ 밖에 없다는 것.

2주에 한 번 육지에 올라오는 우리들. 집에 가면 피곤해서-또는 노느라- 그런 미션을 제대로 수행해온 사람은 절반 정도 되었을라나요. 저도 안 챙겨갔고.
하여간 80여명 되는 2학년 중에 절반이니까 대강 40개? 더 적었던 거 같긴 한데.. 학교로 돌아온 후, 40개의 비비빅을 어디에서 사오냐, 가위바위보해서 진 2명이 가까운 슈퍼에 가서 사오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슈퍼… 걸어서 편도 20분….



이 때는 영종도에 공항도 없었고, 다리도 그 1년 후에 놓였으니까….
지금은 공항 생겨서 섬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그래도 학교 있는 곳이 외진 곳인 것은 다르지 않다).
그 슈퍼에 40개가 다 있지도 않아서 다른 슈퍼 찾아다녔다던가? 어쨌건 그들은 꽤나 녹은 비비빅들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하여간, 그런 뒷사정을 바탕으로 완성된 80여개의 해부침!
그것을 가지고 생물 선생님이 시도한 실험이란…

초파리 애벌레 침샘 염색체 관찰이었습니다.

에 또, 초파리 애벌레 침샘은, 핵분열 없이 염색체가 계속 복제되어서 굉장히 크고 두껍다고 하네요. 하여간 그 염색체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광학 현미경 제물대에 애벌레 한 마리 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머리 부분을 침으로 찢어 발긴 후, 헤치다 보면 침샘이 나온다는….


…………………..

제가 반에서 처음으로 찾아냈습니다.
생물 선생님은, 아 이 초파리 침샘 정말 크다! 하면서 어서 염색하라고 하셨죠.

그와 동시에 주위에서 자기 애벌레도 좀 찾아달라는 요청이;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긴 해도 내숭은 안 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이 남자들이… ㅡ_ㅡ+ 싶지만,
하여간 꽤 여러명 침샘을 찾아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도와준 남자놈(누군지도 기억한다! 지난달에 결혼한 놈!) 애벌레를 터트리니까..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느낌으로… 애벌레보다 더 작은 기생충들이 팍! 터져나오더군요.

나 : “으악~~~~~~”

누..눈에도 안 보이는 기생충;;;;;;;;
대략 호러였다는… 차라리 눈에 보이는 기생충이면 대처라도 하잖아요!!!

그 다음부턴 절대 안 도와줬고, 남들 도와주는 사이 제 슬라이드는 말라 비틀어져서.. 선생님한테 하필 좋은 침샘이었는데 망쳤다고 혼났습니다 ㅡ_ㅡ;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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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그림이 미천하여 ㅎㅎ
새벽에 글 남기신 거 봤어요. 업데이트하다 날려서 복구하던 중이라, 백업 파일 덮으니까 그대로 덮여서;;^^;;

……뭔가 굉장한 경험을 하셨군요. -_-;;
기생충이라니…
초파리애벌레 염색체 관찰은 애초에 염색체 발견 자체가 그걸로 이루어졌다니 나름 정석(?)인 느낌이 드는데, 기생충은 굉장한 복병인데요. -_-;;

전 어릴 적에 과학실험했던 기억이… 아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신청자들 받아서 과학실험 몇 가지를 실제 해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날엔 해부랍시고, 닭을 잡아서 내장을 직접 보는 실습을 했었지요.
…덕분에 개구리 해부도 안 해본 놈들(…여자애도 있었던가 없었던가)이 생닭은 열심히 해체하고 있었더랬습니다.
비위 약해서 결국 그거 못 보던 녀석도 있었던 것 같긴 하고.
그 해부에 썼던 생닭(…)들이 어찌 되었나 했더니, 나중에 전부 튀겨서 간식으로 나온 겁니다.
……생닭은 안 건드리던 녀석들도 그건 다들 참 맛있게 먹더군요.
음식이라는 건 역시 소재의 모습을 유지하는가 아닌가 만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듯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거야말로 “그후에 스탭들이 맛있게 먹었습니다”가 아닐 수 없네요.
그떄 닭먹으면서(…) 봤던 영화가 [어비스]였던 것 같은 기억은 나는군요.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인상은 묘하게 강하게 남아서 심장에 전기충격 주는 장면이라든가 이런저런 중요장면만 띄엄띄엄 기억납니다.

아, 염색체 발견이 이것으로.. 그렇군요.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
기생충은 정말 생각치도 못한 복병이라;;; 대략 트라우마;

뭔가 어릴적 한 실험 중에 제일 인상에 남는 건 해부 같아요. 좋건 싫건.
저는 초딩 때는 해부한 기억이 없는데; 다 중딩이상이었죠. 조개랑 오징어랑 이런 거 해놓고 나중에 쪄서 먹었던 듯한;
초등학교에서, 그것도 나중에 삶지도 않고 튀겨서, 라니 대단하군요!

치킨은 언제나 진리죠~ (결론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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