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린 연인을 추도하기 위해 도진보를 방문하고 있던 나는, 무언가에 끌리듯 절벽에서 추락했다…그럴 터였다. 그러나 정신이 들고 보니 낯익은 가네자와의 거리에 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나를 맞이한 것은, 본 적 없는 「누나」. 어쩌면 여기에서는, 나는 「태어나지 않은」 인간인 건가. 세계의 모든 것과 타협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겁쟁이. 그런 「젊음」의 그림자를 그린, 청춘 미스테리의 금자탑.
‘덧없는 양들의 축연’ ‘추상오단장’으로 국내에 조금씩 소개되고 있는 요네자와 호노부(자꾸 손이 호네자와라고 치려 한다..)의 작품입니다.
불화중인 부모와, ‘자아 찾기 여행’에 나섰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형을 둔 나 ‘사가노 료’는, 2년 전에 연인이 떨어져 죽은 도진보를 찾았습니다. 연인이었던 스와 노조미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가정의 불행으로 세계와 타협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성격. 그런 그녀가 사촌과 함께 도진보에 여행을 왔다가 ‘사고’로 추락했다는 현장에 있는데, 때마침 휴대폰으로 형의 사망 소식이 전해집니다. 형은 끝까지 센스가 없군-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던 주인공에게 희미하게 ‘사가노군, 이리와..’ 란 목소리가 들리면서, 주인공은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져-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합니다.
그리고 눈을 뜨니 그곳은 낮익은 가네자와의 한 공원. 휴대전화는 불통이고, 기차표를 살펴보니 분명 가네자와에서 도진보까지 갔다는 표시는 있으나 돌아오는 차량을 이용했다는 표시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을 터인 집에 본 적 없는 여자가 있고, 심지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기까지.
다행히 상상력이 풍부하고 남을 돌보기 좋아하는 성격인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한 결과, 그 여자는 아무래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사산되었다고 하는 둘째 누나에 해당하는 거 같고, 이 세계는 누나가 사산되지 않고, 대신 주인공이 태어나지 않은(부모는 자식은 둘만 낳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므로) 일종의 패러렐 월드 같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후 네타바레
[#M_열기|닫기|아무래도 자신의 누나인 모양인 그녀-사가노 사키-는 주인공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고는, 단서를 위해 두 세계간의 차이점을 찾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실이 밝혀집니다.
만사에 내성적이고 수동적으로 사태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나’와 달리, 머리도 좋고 행동력도 있는 사키로 인해, 이 쪽 세계의 부모는 관계를 회복하고, 주인공의 단골 식당 주인이 뇌출혈로 가게 문을 닫는 일도 없고, 형인 하지메가 사고를 당하는 일도, 심지어 연인인 노조미가 죽는 일도 없었다는 것. 쉽게 나비 효과라고들 하지만, 사가노 료가 아니라 사가노 사키가 있었을 뿐인데 두 세계에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점차 절망하는 주인공.
원래 세계에서의 자신의 존재는 배제되어야 할 요소(버틀넥)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인공은 원래 세계의 절벽 위로 돌아오게 되고, 그대로 뛰어내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래도 계속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고, 그대로 이 소설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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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다크- 하긴 인사이트밀도 결코 밝은 결말은 아니었지요. 덧없는 양들도 그랬던가요? 하여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세계의 있어서의 자신의 존재 의의’를 따지고 들 줄이야. 해설을 보면 작가가 10대 후반부터 계속 생각해 온 테마라고는 합니다만.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소시민 시리즈도, 결국 죠고로와 유키는 끝에 가서 자신들이 소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작가가 언급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럼 겨울편도 이런 비슷한 맥락으로 가려나요.
아, 미스테리라는 것은 사키가 소소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특히 노조미가 어째서 이쪽 세계에서 죽지 않았느냐- 라는 게 가장 크고요. 제가 볼 때 약간 조증 기미가 있는 사키가 말하는 ‘상상해봐!’는 어째 “문학소녀”를 연상시키기도 하더란..
추상오단장도 꽤나 평이 좋아서 한 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아직 기회가. 문고본이 안 나와서.. 그 전에 한국어판으로 읽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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