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꽤 열심히 읽고 있는데 포스팅한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카와카미 히로미.
북오프에서,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없이 보이기만 하면 책을 집어드는 작가가 몇 명 있는데요,
한 명은 온다 리쿠(대충 다 산 데다가 사 놓고 안 읽은 게 많아서 요즘은 자제중),
한 명은 오기와라 노리코(애초에 작품수가 적지만),
그리고 또 한 명이 카와카미 히로미입니다.
원래 그녀의 아쿠타카와상 수상작인 ‘뱀을 밟다’의 포스팅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북오프에서 갖고 온 것이 시작. 느낌은 나쁘지 않지만 뒤에 실린 ‘어느날 밤 이야기’ 같은 건 너무 몽환적이라 차마 다 못 따라가겠다- 라는 느낌이었고요.
그 이후로 이 작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3만원 이상 사면 북오프 북커버를 하나 주는’ 행사에서, 3만원 맞추려고 집어든 게 ‘선생님의 가방’.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냥 집어든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었네요.
하여간, 선생님의 가방을 읽고 난 후에는 북오프에 보이는 그녀의 작품은 대강 다 사버리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 ‘용궁’이랑 ‘신’이 마음에 들었고(단편집),
그리고 이게 마음에 들었네요. 수필집입니다.
카와카미 히로미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야말로 덤덤하게 일상 이야기를 하는 데 있으려나요. 특히나 작가가 애주가인지, 맛난 안주랑 일본주를 마시는 장면이 작품 곳곳에서 나오는데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안주도 맛있을 것 같고(술은 싫어하는지라).
그러는 와중에 난데없이 연못에서 갓빠가 튀어나와 오랜 애인과의 잠자리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다거나, 옆집에 사는 곰이랑 피크닉을 간다거나, 그 분위기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들어가는 것도 마음에 들고.
문장도, 작가 본인은 애매한 묘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호흡이 짧고, 특히 ‘~である’로 끝나는 문장이 많은데 이게 또 고즈넉한 분위기랑 잘 맞아서..
그래서 이 책도, 에세이집이라는 것을 모르고 샀는데 읽어보니 꽤 재미있더군요.
부엌에서는 가끔 묘한 일이 일어난다. 어제 한밤중에 글을 쓰고 있자니, 등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등뒤라면, 부엌이다. 뀨우우우우, 라는 커다란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이었다. 슬픈 듯이, 울음소리는 울려 퍼진다. 이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냉장고의 울음소리다. 냉장고 문을 꽉 닫지 않고 한동안 놔둔 후, 생각나서 닫으면, 이 소리가 들린다. 정말로 슬픈 듯한 울음소리다. 닫아줬으면 했어요오, 괴로웠어요오, 그런 감정이 담긴 듯한 울음소리다. 하지만 어제는 닫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문은 분명 꽉 닫혀있었다. 그런데도 울다니, 무엇이 말하고 싶었는가 냉장고여. 밤중에 쓸쓸했어요오, 계속 차가운 것도 슬픈 일이에요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가, 아니면, 놀아줘요오, 봄이니까 두근두근해요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가. 울음소리는 5분 정도 지나 그쳤다.
– p 10, 11
에세이라는 것을 읽은 것도 오랜만인가, 했더니 생각해보니 요전에 네이버 캐스트에서 연재 끝난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도 나름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딱히 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수필이라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p.s.1: 수필집 카테고리가 없으니 일단 일반소설로.
p.s.2: Yonda? CLUB 20장 모았으나 보낼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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