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다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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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에 걸쳐 읽었군요. 국내에도 들어와있는 ‘흑과 다의 환상’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1부에서 파생된 이야기로, 4명의 각자 다른 가정을 갖고 있는 남녀가 묻지마 관광‘과거와 만나기 위한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네요.

큰 흐름은 4명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 따로 있기는 하지만, 등장 인물 중의 하나가 미스테리를 외치는 바람에 등산하는 중간중간 소소한 미스테리를 내놓기도 하고, 그 때 범인이 밝혀지기도 안 밝혀지기도 하고… 또 그와는 달리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어서 따로 기록도 많이 했네요. 적어놓고 보니까 대부분이 아키히코와 세츠코의 만담이지만(…).


학생시절의 친구를 만날 때의 안심감은, 어차피 안간힘을 써보았자 이미 태생이 알려져 있는, 저 어리석고 자의식만 비대했던 10대의 끝과 20대의 시작을 공유했다는, 절반 포기와도 같은 뻣뻣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인이 되어서 얻은 친구는, 일로 고락을 함께 한 연대감으로 묶여져 있어 평생 알고 지낼 거라 생각되는 녀석이라도, 아무래도 인생의 제2부에서의 친구라는 테두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베이스로 삼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제1부의 인간과 제2부의 인간을 겹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인간, 제2부에서 자신의 바람대로의 인생을 쌓아올려, 제2부의 자신에게 안주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본질은 역시 제1부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구두주걱인가. 백에 들어간다는 건, 차통에 들어가는 스푼 같이 작은 녀석이네. 긴 거라면 효자손이 되려나 생각했지만.”
“저기 말야, 우리 상사는 일은 엄격해도 행동거지는 너무나 우아한 여성이라고. 아저씨도 아니고, 밖에서 효자손 같은 거 쓰지 않아.”
“그런가, 나랑 같이 생각하면 안 되겠네.”
“너, 회사에서 효자손 쓰고 있냐?”
“응. 편리해. 회의에서 지시봉 대신 쓸 수도 있고.”
“우리들,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른 모양이다.”
“유감이네.”


“자연의 풍경이라면 괜찮지만, 오히려 아파트 2층이나 3층 정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쪽이 무서워.”
“어째서?”
“왠지 지면이 가까워서, 문득 몸을 내밀어 보고 싶어져.”
“그런 거려나.”
“응. 분명, 고소공포증인 사람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해. 높은 곳에 서면 자신을 신용할 수 없게 돼. 스스로 몸을 내밀어, 지금이라도 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해.”


“모두 아침이 빠른 거야. 밤에는 낼름 자는 걸.”
“어째서 모두 낼름 잘 수 있는 걸까. 나는 너무나 믿을 수 없어. 밤은 즐겁잖아. 술 마시고, 늘어지고, 심야영화 보고, 추리소설 읽고, 이것저것 하는 것만큼 이 세상에 들거운 게 있냐? 빨리 자다니, 아깝게! 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하고 바른 생활을 보내는 녀석을 보면 소리치고 싶어져.”
“뭐라고?”
“그런 거, 어디가 즐겁냐! 어째서 밤에 눈을 돌리지 않는 거냐! 인간의 참된 모습은, 영혼의 외침은 밤에 있다고!”

한편, 30대의 남녀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온다 리쿠 작품답달까.. 미중년 같은 것도 나오고,
무엇보다 ‘보리바다’에 나왔던 카지와라 유리에 대한 진상은…. 요즘 장르 문학이 어쩌고 한다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많이 허무했습니다 ㅡ_ㅡ;;

그 외에는, 산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등산 내지는 여행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역시 온다 리쿠 작품은 마음에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너무 잘 갈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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