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26세의 사와키 코타로는, 잘 나가기 시작한 르포라이터 일을 전부 던져버리고, 홍콩으로 떠나, 육로 2만 킬로미터를 버스로 런던까지 향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왜 유라시아인가, 왜 버스인가. 확실한 것은 자기자신도 몰랐다. 그저, 지구의 크기를 이 발로 자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경제신문에 연재되어, 1986년 5월에 신쵸사에서 제 1편과 제 2편이 간행. 1992년에 제 3편이 간행되어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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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쵸문고 6권으로 나와있는 일본의 롱 베스트셀러 여행기입니다. 원제는 심야특급. 지금까지 600만부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한국에는 2004년에 300p 짜리 책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절판). 문고본 3권 분량을 1권에 넣은 셈인데 축약한 거 아닐지 싶긴 한데 읽으면서는 딱히 느껴진 건 없었어요.. 일단 2권짜리 책 중 1권만 빌려서 읽어보았습니다. 1권에 나오는 나라는

1. 홍콩, 마카오
2. 말레이 반도, 싱가폴
3. 인도, 네팔

왜 뜬금없이 모르는 일본인의 기행문을 잡게 되었냐면, 이 소설 문고본 표지를 이용해 롤반이 나왔기 때문입니다(쿨럭).
롤반이야 여기저기 콜라보하지만, 소설 관련으로 콜라보했던 건 하야카와문고SF 에서 조지 오웰/홈즈/루팡이 나왔던 게 다였던지라,
신쵸사가 롤반이랑 콜라보해서 내놓은 노트라니 소설이 어지간히 유명했나보다 싶어서. 근데 소설이 아니라 기행문.
(일본 문구사지만 상품명은 독일어인 롤반과 일본 기행문이지만 표지에 쓰인 언어는 프랑스어인 심야특급)

원래 목적이었던 델리에서 런던까지 ‘일반’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은 문고본 4권부터 시작하는 모양인데요,
인도까지의 3권까지는 버스보다는 대부분이 비행기, 가끔 배, 가끔 열차고 네팔과 인도를 오갈 때만 버스를 타는지라 뭐야 소개글과 다르잖아.. 싶었습니다.
그보다 사실 돈없는 청춘의 배낭여행기니까.. 게다가 그냥 20세기도 아니고 1980년대의 아시아라,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지도 하나 의지해서 여행을 해야하는 청년에 대한 아슬아슬함도 물론이고, 작가가 르포라이터라서 그런지 몰라도 현지인들의 생활? 태도?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하나같이 여행객을 뜯어내려고 하거나 돈에 대한 욕망이 느껴지는… 창녀는 네팔 제외 거의 모든 나라에 나오고.. 당시의 시대상을 그린 거라고 넘어가려고 해도 제가 여행에서 바라는 게 현지인과의 교류 같은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잘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저 때가 버블경제기의 일본이니까, 작가 자신이야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 머무르며 짠내나는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을 관찰한 거지만, 읽는 독자들은 아 일본 외의 아시아 국가는 다 가난하지-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인 후에 배낭여행 붐이 일어(났다고 합디다)났을 거라고 생각하면 뭔가 좀 거북하구요.
작가가 현지인을 바라보는 것에서 딱히 우월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는 않지만, 작중에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끈질기게 창녀를 소개하던 호텔 보이가 돈이 없다고 거절하는 작가에게 ‘외국에 놀러나온 일본인 주제에 돈이 없는 게 말이 되냐’라고 외치는 부분이 진리랄까.
제가 저 나라 사람이었다면 관광객은 관광객답게 우리나라의 어두운 면을 볼 생각일랑 말고 돈이나 쓰고 돌아가라고 할 거 같은.

한국에 출간된 2004년은 생각해보니 배낭여행이 붐이 된 시기니까 그 시절에 읽으면 좀 나았으려나요. 하지만 그 때(젊었을 때)도 지금도 저는 배낭여행은 못 하겠지만요. 생각해보면 순례길 걷는 것도 배낭여행의 일종이니, 제가 하고 싶은 건 트래킹일 듯. 사람 부대끼는 것도 싫고 여자 혼자 몸으로 위험한 곳은 가고 싶지 않고.

원제가 심야특급인데 왜 한국어판 제목이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표지에도 ware touchaku sezu라고 써 있음)인가 했더니 시리즈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딱딱한 표지 분위기(내용도 르포라이터가 써서 그런지 밝지는 않다)와 별개로 군데군데 이런 삽화가 튀어나오는 게 미스매치 ^^;

이렇게 산뜻하게 다니는 여행이 아니던데..
책 안에 2014년에 대출한 영수증이 끼워져 있던데 설마 9년 동안 아무도 안 빌린 건 아니겠지… 장난기가 돌아서 영수증 뒤에 2023. 7. 2 완독이라고 썼습니다 ^^;
옛날에 책 뒤에 대출카드가 꽂혀있던 시절에는 내 앞으로 누가 빌렸는지 보는?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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