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죽림의 시대다!」번뜩인 토미히코 씨는, 쿄토의 서쪽, 카츠라로 향했다. 실가에 죽림이 있는 직장 선배, 카기야 씨를 방문하는 것이다. 황폐해진 죽림의 손질을 계기로, 목표는 죽림 졸부! MBC(모리미 뱀부 컴퍼니)의 카리스마 경영자가 되어, 자가용 세그웨이로 비와호를 일주…. 한없이 펼쳐지는 망상을, 저자 독특한 문체로 엮은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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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히코 씨에게는 취미란 것이 없다. 예전에는 쓰는 것이 취미였지만, 그것이 일이 되자마자 토미히코 씨 유일 최대의 취미가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받고 있는 것이니 그에 대해 불만을 말할 생각은 없지만,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에는 불편한 일이다.
토미히코 씨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뭐라도 좋으니 써 봐라.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닥치는 대로 좋아하는 것을 써 봐.”라고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치 새로 쓰기 시작하려는 양 등줄기를 펴고, 엄숙히 볼펜을 쥐고, 수첩에 커다랗게 써 보았다.
“미녀와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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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 토미히코의 7번째 작품입니다. 지금 모리미씨가 작가 활동 중단하면서 블로그의 작품 소개를 내려버려서 확실치는 않지만, 각기 아들/딸로 불리는 모리미씨의 작품 중 ‘차녀’에 해당합니다.
(장녀는 ‘밤은 짧으니 걸어라 소녀여’. 나머지는 전부 아들…)
모리미 토미히코씨의 작품은 대부분 라이센스 되었는데 이거랑 다다미 네장 반 나라 견문록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견문록 쪽은 하드커버라 사기 좀 부담되고, 신역 달려라 메로스는 아직 달려라 메로스를 읽지 않아서 뒤로 미루다 보니 이게 남아서 사 봤습니다.
오츠이치의 ‘소생일기’도 라이센스 들어왔는데 이건 안 들어오려나요.. ㅇㅅㅇ
‘죽림’을 소재로 한, 2006~2008년간 연재된 망상 에세이집, 입니다.
망상 에세이랄까, 사소설이랄까. 하여간 주인공은 일단 ‘토미히코 씨’. 에세이집이지만 서술은 3인칭 전지자 시점. 그가 연재물의 소재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미녀와 죽림-을 결정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친우 아카시씨(다다미 넉장 반의 히로인은 이 분에게서 성을 딴 듯..)와 함께 의기양양 죽림으로 향하지만, 모기의 습격과, 또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몇 그루 못 베고 돌아오고, 다음에는 마감이 밀렸다느니 편집자를 만났다느니 수상받으러 갔다느니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실제로 죽림에 간 이야기는 몇 회에 한 번 꼴로 나오는 에세이입니다 ^^;
그리고 끝끝내 ‘미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다가, 중반 넘어가서는 ‘미녀와 죽림은 등가교환이 가능한 존재. 따라서 미녀를 만난다는 것은 죽림에 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번에 미녀를 만났으니까 죽림에 안 가도 돼!’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모리미씨의 특기인 소도구로 아기자기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하고는 거리가 있습니다만(에세이?집이니까), 중간중간에 나오는 개그 코드가 맞는다 싶으신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모리미씨의 작품을 원서로 읽은 건 밤은 짧으니~ 하고 이것뿐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접한 모리미씨 작품 중에(다다미 애니 포함) 처음으로 관서 사투리가 나오는 걸 보았네요.
참고로 트친이신 편집자/번역자 여러분께 바치는 의미로, 한 번 타임라인에 올렸던 부분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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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을 멀게 느끼면서 책상 앞에 앉아, 이것도 아냐 저것도 아냐 하고 고쳐쓰고 있노라면 점점 기운이 쇠잔해진다. 마감이라는 것이 꽤나 심술궃은 요괴로 생각되기 시작한다. 토미히코 씨의 뇌리에는 어느새 “마감”이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요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을 “마감 지로(締切次郞)”라고 한다.
마감 지로는 은단 냄새를 풀풀 내고 있다. 살이 쪘다. 땀을 많이 흘린다. 그리고 끈 넥타이를 매고 있다. 키는 60cm 정도다. 둥그런 눈을 하고 있다. 그녀석은 늘 토미히코 씨의 옆에 들러붙어, 때로는 책상 다리에 꾹꾹 배를 갖다 대면서 하아하아 거린다. 토미히코 씨가 노려보면, 말없이 둥근 눈을 글썽인다. 그야말로 “밟아줘”라고 말하는 듯한 짜증스러움이다.
“마감 지로야, 너는 대체 누구냐.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토미히코 씨는 말해보았다.
“돌아가!”
하지만 마감 지로는 책상 다리에 매달려 고개를 흔든다. 말없이, 수수께끼를 품은 둥근 눈으로 토미히코 씨를 마주 본다. 땀에 젖은 그 얼굴은 완전히 아저씨다. 참고로, 수수께끼가 많은 마감 지로의 첫번째 수수께끼는 “형인 마감 타로는 어디 있는가”라는 것이다.
“마감은 친구, 무섭지 않아.”
토미히코 씨는 중얼거려 보았다.
저 옛날, ‘캡틴 츠바사’라는 만화가 유행했다. 그 탓에 친구들이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공은 친구, 무섭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소학생 토미히코 씨는 “뭔 소리야”라고 생각했다. 토미히코 씨는 그 둥근 놈들이 무서워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건 작건 공은 증오스러운 적이었다. 그런 어중간한, 다음에 어디로 굴러갈지도 모르는 놈을 갖고 노는 것을 어째서 강요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소프트 볼이나 축구나 피구를 시키는 선생들은 한 명도 빼지 말고 뒈져버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미히코 씨는 ‘캡틴 츠바사’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사정이다.
하지만 지금, 토미히코 씨는 중얼거린다.
“마감은 친구, 무섭지 않아.”
구라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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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감 지로는 이후 모리미 씨 블로그에 종종 등장합니다만, 1년 전 모리미 씨가 소환한 마감 타로에 의해 전멸당한 후 더 나타나지 않고 있다네요. (1년 전의 작가 활동 중지 선언)
2 Comments
Add Yours →이 양반 작가활동 접었나요. -ㅁ-;
이 양반 책 읽기 시작한 게 작년이었던 건데, 작년에 작가활동 접었다니… orz
‘검은 머리 처녀’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더이상 작가활동할 이유가 없어진 건가!
작가의 막무가내가 에세이가 되니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인데요.
관서 사투리라.
이 양반이 교토사람이고 작품 배경이 대부분 교토라고 알고 있어서, 교벤(京都弁)일 거라고 생각했는게 관서사투리라는 건 좀 의외군요.
…아, 교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쓰면 구별은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가끔 나오는 교토여자들 말투가 인상적이라, 제 안에서 교벤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긴 거라. -_-;
p.s.
번역자/편집자와 트친이셨군요. +_+
p.s.2
비가 새는 문제로 결국 다른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방 크기는 비슷한데 왜 전의 방에는 잘 들어갔던 물건들이 이쪽에선 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누울 자리도 나오지 않는 건지 의문이네요.
오자 지적은… 그냥 제가 제 글에서 그런 거 신경 많이 쓰는데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__);;;;
내용과는 별상관 없는 자잘한 태클 같은 거라, 기분 나쁘시지 않을까 했는데…
(…소심소심)
도움이 되시는 거라면 다행입니다만.
1. 작년 여름에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했다네요 ^^
2. 아, 관서사투리랑 교토사투리의 차이를 모르겠어서 그냥 칸사이벤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와있었는데요, 작가는 나라 출신이라고 합니다. 교토대 들어가면서 교토로 나온 듯..
3. 요즘은 아무래도 장르소설 쪽에서 놀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
4. 태클 거는 것이 뭐 기분 좋은 사람이야 없겠지만요, 유령 님의 경우에는 태클 거시는 게 단순 오타보다는 제가 우리말 맞춤법 틀렸을 경우가 많아서요, 공부가 됩니다~ ..도덕->배덕의 경우엔 기분나쁘고 자실 것도 없이 그냥 저한테 기가 막혀버린지라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