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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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츠츠이 야스타카를 더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카와카미 히로미의 서평집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서평이라기보다는 해설 모음집인데, 이 책을 구한 것까지는 좋은데 실린 작품 중에 제가 읽은 게 네 권 밖에(오가와 요코 두 권, 무라카미 하루키 한 권, 나시키 카호 한 권)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죠. 제가 읽는 작가 취향과 이 작가가 주로 해설을 싣는 (출판사)경향이 따로 논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하여간 충격을 먹고 이 서평집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구하다 읽었는데, 유난히 츠츠이 야스타카 작품이 많았습니다.
SF 소설은 그다지 읽지 않는 저지만, 물론 츠츠이 야스타카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지는 제법 최근까지 몰랐습니다.
하여간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자 하고 처음 집어든 것이 파프리카. 몰랐는데 애니화도 된 작품이라더군요.

주인공은 예전 ‘파프리카’란 이름으로 남의 꿈에 잠입해서 그 꿈에서의 치료로 환자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벌인 적이 있는, 천재미녀과학자.
어느 날 그녀의 파트너가, 강제적으로 남의 꿈을 조작할 수 있는 기기를 발명하게 되고, 그 기기를 둘러싸고 음모가 펼쳐진다는 내용.
인셉션이나 비밀 같이 대상의 꿈 안에 들어간다는 내용은 그리 드물지도 않은데, 중간부터 이게 꿈 속에 있는 존재가 현실 세계에도 나타난다는 전개가 되면서 초능력도 아니고 에에 이건 좀ㅡ_ㅡ;;;; 하고 바라보게 만들다가, 결국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로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니라,
1. 전개가 급작스럽습니다. 주인공의 예전 활동이라든가 이런 사전 내용이 전혀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과거 비밀리에 행동한 파프리카(일종의 코드 네임?) 이야기가 튀어나오니까, 어어 이거 시리즈물인가? 전편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고…
2. 이건 한국어판의 문제지만, 끝나는 것도 급작스럽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데없이 분권을 해놓으면서(일판은 단권), 상이라든가 1이라는 숫자도 안 붙여놓은 불친절함. 어 설마 여기에서 끝? 상권인 거지? 하고 찾아보게 만들었구요.
3. 다시 ‘파프리카’로 돌아가서, 파프리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과거가 있다, 라는 식으로만 써 놓고, 잠자코 읽고 있자면 옷을 빨간 티+청바지로 갈아입고 화장한 얼굴에 주근깨를 그려넣어서(분장?) 아 저 치바 아츠코 아니에요 10대 소녀 파프리카에요☆ 라고 하는 게 이게 무슨 괴도물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소설에서;;; 심지어 더 읽고 있자면 단순한 분장이 아니라 아예 또다른 인격이라고 나오는데 인격이 바뀌는 거 안 느껴짐. 기억도 그대로 승계받고. 그냥 화장만 좀 고쳐서 나올 뿐인 거 같은데… 일서로 보면 1인칭이 변하거나 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어판으로는 둘 사이의 말투 차이라든가 전혀 안 느껴지고요. 애니는 성우가 하야시바라 메구미라고 하니까 뭔가 다른 게 있겠지..

4. 위에도 썼지만, 꿈을 통해 심층의식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는 별로 참신한 발상도 아니고(소설 발표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하지만 정신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현실에 등장한다는 내용이 되면서부터… 도무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 싸이코키네시스가 나올 분위기는 아닌데… 싶었는데 결론은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거냐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거냐’.
5.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변명을 하기는 하는데, 파프리카가 주위 사람들에게 갖는 성적인 역전이가 너무 심합니다 양다리도 아니고 네다리ㅡ_ㅡ 남자 환자 치료할 때마다 그 남자랑 꿈 속에서 잘 거냐며ㅡ.ㅡ
그리고 작가는 그걸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습니다. 상권에서도 좀 걸렸는데, 상권을 읽고 나서 하권 읽기 전에 카와카미 히로미의 해설을 읽었거든요. 거기에서, 하권 내용 중에 주인공이 노세와 코나가와한테 “부탁이니까 날 범해달라”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걸 보고 에에 이거 하권 읽어야하나;; 설마 3P는 아니겠지; 했었고요. (다행히? 한 남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다른 남자하고 성교를 벌였지;;)
한편으로는 적(오사나이)이 덮칠 때는 ‘요즘 현실세계에서 성생활도 못했는데 남자도 잘 생겼겠다 그냥 한 번 대주지 뭐’로 나가서… 책 던져버리고 싶었음… 심지어 그 강간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원인도 너무 유치했음;; 여주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격한 나머지 안 선다며;;;

…이런 이유로 읽고 나서 매우 찝찝했습니다.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은 그냥 패스.

p.s: 메이코이 팬디를 끝낸 직후라, 코나가와(경시청 관료)가 후지타 고로(CV. 후쿠준)랑 겹쳐보이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ㅡ_ㅡ;;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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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죠?
원작은 안 읽었지만 영화(애니)는 참 퓨어한 내용이던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원작 읽기가 무서워지는군요.ㅜㅜ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는 약간 현대적으로 바꾼 것도 있었으니까요…
아, 그래도 원작 소설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막 재미있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

원래 저 작가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완전 ‘의외’의 작품이었고 그 밖은 모든 작품이 얼척없다고 언뜻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_-;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좋아해서 다른 작품 찾아보면 식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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