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연대 SF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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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J 콜렉션 창간에 이어, 2003년의 하야카와 문고 JA내 레이블 ‘차세대형 작가의 리얼 픽션’에 의해 일본 SF는 제로 연대의 ‘초여름’을 맞았다.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SF 매거진 독자상 수상작 ‘나는 미사일’, 우부카타 토우의 ‘마르두크’ 시리즈 외전, 일본 SF 대상 후보작 ‘당신을 위한 이야기’에서 주목한 하세 사토시에 의한 걸작 단편 등, SF 매거진 개제의 리얼 픽션을 중심으로 엄선한, 전 8편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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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 세대인 줄 알았는데 제로 연대였어;;
제로 연대란, 1990년대 일본 SF의 침체기를 겪은 후 2000년대 초반에 이런저런 상이라든가 SF 문고 레이블을 제정해서 SF의 부흥을 꾀한 결과 나온 작품들을 얘기한다고 합니다.

일본 SF뿐만이 아니라 제가 SF 자체를 많이 읽어보지를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책에 대한 감상이 그리 곱지 않습니다. 트위터에도 잔뜩 욕하기도 했구요. 혹시 특정 작가의 팬이 계시다면 이 포스팅은 그냥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
그럼 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책을 샀냐? 라고 한다면, yes24 개인 중고샵에서, 구매금액 채우려고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어서요. 앤솔로지니까 나쁘지는 않겠지, 우부카타 토우도 있고.. 란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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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두크 스크램블, “104” / 우부카타 토우
마르두크 스크램블의 외전.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군사 활동/범죄가 법의 어떤 구멍을 뚫고 벌어질 수 있는지라거나, 법률을 위반한 기술로 만들어진 존재가 자신의 유용성-혹은 존재 의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강 읽으면 그냥 총격전이 벌어지는 액션물이긴 합니다만.
그나저나 초반부는 무슨 배틀 로얄처럼 시작되던데 원작은 뭔 내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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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지 크레이머에게 작별을 / 신죠 카즈마
이런저런 설정을 쓰고 싶은데 역량이 안 되는 작가가 SF를 쓰려고 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단편 1.

작가는 15X24 등의 작품이 라이센스로 들어온 라노베 작가. 물론 전 이게 처음 읽는 거지만요.
전뇌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유전자/사고, 감정 등등의 정보를 일종의 전자(양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어, 거대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계라는 설정..인 것 같습니다. 또 이 네트워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는 사회마다 달라서, 주인공 소녀가 속해 있는 세계(여학교;;)는 가능한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주인공의 세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거부하고 심지어 네트워크를 부숴야한다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인 것 같습니다. 
..것 같다고 표현하는 건 문장을 읽으면서 도무지 뭔 소린지 알 수 없었기 때문. 그냥 돌아가는 분위기가 위에 말한 방식인 것 같고요. 단편 해설에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정보 전달, 과거에 대한 인식의 변화, 유전자의 갱신 등을 테마로 하고 있다니 그런가 봅니다. 그런가 본데…
35p 밖에 안 되는 단편 뒷부분에 설정에 대한 작가주가 3p나 있어!!!! ㅋㅋㅋ 무슨무슨 기술에 대해 실제로는 몇 년에 미국 어디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고or어느 작가 무슨 단편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3p…. 그냥 그런 거 필요없이도 잘 읽히게 쓰면 안 되나요 ㅋㅋㅋㅋ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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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엑스트라 라운드 / 사쿠라자카 히로시
ALL YOU NEED IS KILL 작가의 단편. 이건 작가의 ‘슬럼 온라인’이라는 작품의 영어판을 내놓으면서 추가한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소아온이나 닷핵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그냥 술술 읽힘. 거기에 ‘온라인 게임 안의 캐릭터와 실제 나와의 관계’에 대해.. 살짝 고찰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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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데이 드림, 새처럼 / 모토나가 마사키
주로 에로게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작가라고 합니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주인공이, 함께 있는 인물의 본질을 ‘백일몽’으로서 느끼게 되고 백일몽을 통해 그 인물의 본질에 간섭할 수 있는 스킬을 얻게 되면서, 수수께끼의 조직 밑에 들어가 수수께끼의 조직과 싸운다는 이야기… 인데 마지막은 서술 트릭이 나와서 이건 뭐 SF가 맞나? 뭘 말하고 싶은 건가 했던 단편. 그래도 뭔 내용인지는 알겠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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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tmosphere / 니시지마 다이스케
앳모스피어라는 만화의 외전? 6p 밖에 안 되는 만화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플갱어’들이 어딘가에서 나타나고, 그 도플갱어를 방치하면 본체(?)인 인간이 죽게 된다는 세계. 화자는 본체들의 의뢰를 받고 도플갱어를 사냥하는 여학생인 모양.
이것도 역시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싶지만 외전이랄까 프롤로그랄까 그런 거니까 그냥 넘어가고. 설정 자체는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를 연상시키더군요. 아니 도플갱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바디 스내처 쪽이 도플갱어를 참고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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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앨리스의 심장 / 우미네코자와 메론
이런저런 설정을 쓰고 싶은데 역량이 안 되는 작가가 SF를 쓰려고 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단편 2.

4차원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어느 날 5차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때?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네…
서로 다른 차원의, 두 개의 시점에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한 시점은 이야기를 ‘희곡’의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건 괜찮은데
나머지 시점은 내용 진행을 서술 이런 거 없이 그냥 대화로만 진행합니다. 옮겨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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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틀려… 어떻게 하면 그런 뒤들린 해석이 되는 거야…
컴팩트화라는 건 말이지… 에로책인 그라비아를 둘둘 말아서 만든 얇은 통이 있다고 치고.. 그것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선으로 보이잖아. 그 위를 기어가는 곤충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지?
거기 있어! 라고 알려줘. 보면 알잖아(후와후와)
보고 있는 게 스티비 원더라면 어쩔 건데.
에또… 그럼, 끝에서 몇 cm… 이라고 말하면 알려나?(후와후와)

….
자 첫번째줄 주인공 생각. 두번째줄 주인공 세번째줄 여주 네번째줄 주인공 다섯번째줄 여주.
….내내 이런 식. 뭔가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인식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거 같지만!!! 저런 인터넷 소설에서나 보이는 형식 파괴 글 주제에 떠드는 건 ‘5차원의 존재에 대한 인식’ 이니까 짜증이 모락모락!
이 작가도 게임 시나리오라든가 그 노벨라이즈화라든가 이런 곳에서 활동하는 분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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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땅에는 풍요 / 하세 사토시
원환소녀의 작가. 이 쪽은 작가 소개에 ‘창과 비교되는’ 이라는 언급이 있어서 에!! 테드 창? 이랬습니다만… 흐음…?
이 단편은, 개인이 갖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 등을 종래의 인터넷 등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뇌에 직접 입력하는 기술이 실용화될 때, 그 언어는 아마도 영어가 될 테니까, 그럴 경우 타 언어를 가진 민족의 문화의 계승 등에 미칠 영향 등을 말하고 싶은 듯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결국 ‘문화는 죽지 않는다’. 그래도 얘는 대강 무슨 말 하는지는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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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미사일 / 아키야마 미즈히토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작가. 화자는 몇 백년간 하늘에만 머무르며 전투를 하고 있는 전투기. 하늘에만 머물렀기에 ‘땅’은 거의 도시전설? 같은 존재. 대화할 상대도 없이 그저 연료 공급 -> 전투의 반복이었던 주인공 전투기는 어느 날 자신 안에 수납되어 있던 미사일들이 각자 자아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투기의 제 1의 목표는 자신의 존재 유지, 제 2의 목표가 적기에 대한 공격이라면 미사일의 존재 의의는 적기에 대한 공격. 서로 상반되는 존재 의의를 갖고 있지만 서로의 가치관을 공감..은 개뿔, 하지만 점차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또 땅을 모르는 전투기/미사일이 ‘나의 동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영원히 추락하게 될까, 아니면 괴담으로만 들었던 땅이라는 존재에 부딪혀 없어지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건,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라고 생각하는 모습과 크게 다를 거 없기도 하고요.
자신을 적에 격추시키는 것에 존재의 의미를 찾는 미사일은, 카미카제를 떠오르게 해서 초반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가 전투기와 미사일을 빗대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강 알게 되더라구요. 이 책에 실린 8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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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저기, 너희들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죽으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입에 담은 후에야,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01은 나를 바보취급하듯이,
‘그럼 이 쪽에서 물어보지. 너는 대체 언제까지 추하게 살아갈 생각인데? 네가 작전 행동에 옮기고서 몇 년이나 흘렀냐? 100년? 200년? 어째서 너는 그런 수치를 참고 살아갈 수 있는 건데?’
나는 씁쓸하게 변명한다.
“즉, 나는 그저, 상대의 가치관을 인정하려고 노력해보자고 한 것뿐이야.”
‘가치관을 인정한다, 라고? 입발린 소리 하지마. 너도 04랑 마찬가지 머리가 비었냐? 그 녀석은 누구랑 싸우면 꼭 그 소리지,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해라. 정말이지 잘도 말한다니까, 그 쓰레기 자식.’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해서 뭐가 나쁜데?”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거야. 그 녀석이 말하는 건 결국 “누군가와 말싸움이 될 때는 꺅꺅대지 말고 상대이 하는 말을 들어줍시다” 라는 정도의 의미 밖에 안 돼. 그거랑 ‘가치관을 인정한다’ 와는 차원이 다르짆아. 애초에 말이지, 진짜로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누구와도 말싸움 안 하고 혼자서 자기완결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런 대단한 게 안 되니까, 우리들 미사일도 사신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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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에 명중해서 죽는 것이 우리들 미사일의 유일무이한 목적이야. 기회는 한 번 뿐이고, 그 한 번을 놓치면 그 뿐.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비행한 후에 영원히 낙하하지. 생각만 해도 무섭지만, 그것이 현실이야. 그라운드 크랙터는 아마, 그 무서운 현실을 견디지 못한 녀석이 생각해낸 꿈이라고 생각해. 비록 적기를 놓쳐도 자신의 존재는 완전한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수치에도 언젠가 마지막이 온다- 그렇게 믿고 있는 동안에는 현실의 무서움을 잊고 지낼 수 있어. 그것을 겁쟁이라고 비웃을 수 있다면 희극이고, 기분은 알겠다고 동정한다면 비극이겠지.’
나도 언젠가 격추당한다.
아니면, 노화가 될 만큼 된 후에 추락한다.
(중략)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잊혀지는 일 없이, 나의 사고 바닥 깊숙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았다.
그라운드 크랙터의 이야기는, 나의 사후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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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설정은 미래라도 그 저변에는 시대를 초월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작가가 그만큼의 역량이 없는 경우, 혹은 역량도 없으면서 설정에 집착할 경우 어떻게 되어버리는지 알려주는 단편집이었습니다.
이 책 작가 선별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대부분 라노베나 에로게 시나리오 라이터들.. 아니 라노베 출신이라고 해도 문장이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저도 아리카와 히로라든가 좋아하고), SF라는 장르와의 경계선이 얇아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뭐 설정물은 설정물대로 좋기는 한데, 최소한 재미있게 읽힐 수 있게 써야하겠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서; 예를 들어 사레류도 이것보단 읽기 쉬웠지만 사레류는 SF라고 부르지는 않거든요 ^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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