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포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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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은 5살 때. 공영 주택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도망간다.”. 엄마의 이름은 마코, 딸의 이름은 코마코. 노인만이 사는 성채도시나 기묘한 풍습이 남아있는 온천 마을. 도망생활 속에서 코마코는 말을 습득하고,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언제까지나 함께라고 믿고 있었다. 모녀의 도피행, 그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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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신문기자가 와서 가족사진을 촬영할 때 한 명만 개집 뒤에-라는 건 비유잖아, 물론 알고 있지만-숨어었던, 비밀스런 장녀의 존재를 안 순간, 오가오카 선생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어. 그 집의, 세간적으로는 승자일 터인 그 집의, 진정한 강도란 숨겨진 장녀의 약함 그 자체고, 멋진 가족의 진실의 모습도, 이콜, 그녀라고. 가족은 쇠사슬. 그 집의 가장 약한 부분이야말로 가족들의 진실의 모습. 그러니까,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키지. 비겁한 인간은 약한 누군가를 불길하게 여기고, 버리려 하지. 버려진 약한 자는, 밤을 헤메이고… 고령화도, 간호도, 학대도, 전부,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소속한 가족의, 쇠사슬의, 가장 약한 부분이야말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자, 실제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소중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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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다…!
문고본 700p인 장편입니다. 사쿠라바 카즈키. 해설은 카쿠다 미츠요.
소개글로만 보면 엄마와 딸의 도피이야기인 거 같은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전반부(패밀리 포트레이트)가 도피행이고, 후반부(셀프 포트레이트)는 엄마와 헤어진 이후의 딸 코마코의 이야기.

화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5살 아이 코마코. 20살에 자신을 낳은 엄마 마코와 함께 기차를 타고 목적지 없이 여행하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에 내려 그 곳에서 살아가다가, 추적자가 오면 다시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은 기묘한 풍습이 남아있는 온천마을이라거나, 산속에 둘러쌓인 노인들만 있는 마을이라거나, 돼지우리에 둘러싸여 하루종일 돼지를 도살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라거나, 시인 등의 살아있는 인간을 풀어놨다고 하는 중세 유럽의 정원을 본뜬 정원이라거나.

그렇게 사는 곳이 바뀌어도 마코를 위한 코마코. 코마코를 위한 마코, 라는 식으로 세상의 구성원은 자신과 엄마 뿐이고, 엄마를 위해서만 살아간다고 믿고 있던 코마코. 그래도 문자를 익히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그래도 실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신체가 성장하고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아이’가 아닌 코마코의 자아가 깨어나려는 것을 겨우 억누르고 있던 14세때, 결국 추적자에게 잡히고, 코마코는 모친과 이별하게 됩니다.

2부는 ‘모친을 잃은 후의 인생은 여생과 다름없다’며 삶의 의미를 잃은 코마코가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어머니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지금은 빈껍데기고, 그래도 (유명한 문학가인)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성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관능 사이에서 내내 흔들리고.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소설을 쓰는 것으로 승화시키고, 결국은 자신 안에 남아있던 ‘마코(어머니)’라는 존재을 극복/융합하게 된다… 라는 내용입니다.

책 제목이나 소개글을 볼 때는 어디까지나 모녀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후반은 오히려 ‘어릴 적 뭔가의 결함을 안고 자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흔들리고 그것을 극복해가는지 그린 소설.. 이라고 느꼈네요. 가족의 진정한 모습이란? 이란 물음도 약간 나오고.

배경도 1부는 모녀가 도망쳐들어간 현실미 없는 폐쇄공간(이상향?)이었지만. 2부도… 고등학교랑 바는 좀 현실미는 떨어지지만, 코마코가 집필을 위해 헤매기 시작하는 황야라든가, 나오키상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 등은 제법 현실적.
사쿠라바 카즈키 작품이니까 좀 관능적인 묘사도 나오고요.. 음, 그러니까 문장 자체는 좀 환상적이라는 이야기, 좀 관조적이고.

나름 재미있게 읽었는데 너무 길어서 두 번은 안 읽을 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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