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악마

오랜만에 추리소설 이야기나.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초기 일본 추리소설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 이름이 찬란한 패러디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하더라도. (어째 낯익은 이름이다 했더니)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역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음울한 짐승’과 ‘외딴섬 악마’ 두 권이 되겠군요.
음울한 짐승은 단편집, 외딴섬 악마는 장편입니다만 단편의 경우 일본에서 드라마화도 된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뭐랄까.. 단편 중에는 트릭을 이용한 본격 추리소설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범죄자의 이상심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SM이라던가, 훔쳐보기라던가, 인간의자라던가, 등등.
뭐 에드거 앨런 포 작품에도 그런 경향은 보이고 있지만요, 천장에서 사각사각 내려오는 칼이라던가, 임금님을 태워죽인 곱추라던가, 그 유명한, 벽에 발라진 검은 고양이라던가.
그래서 음울한 짐승을 읽고서 이 작가에게 꽤 점수를 줬습니다만(별 네 개)… 장편인 외딴 섬 악마를 읽고는 별 세 개로 깎아버린.

스토리는 간단. 주인공의 약혼자가 밀실 살인을 당합니다. 살인 동기나 수법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
복수를 결심한 주인공은 자신과 친한 아마추어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하게 되고, 그 탐정마저도 해변가에서 ‘겉으로 보기에 불가능한 살인’을 당합니다.
그러다 주인공과 친했던 의사씨가 사건 해결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마침 그 의사가 사건과 연관이 깊어서 실마리를 타고 가니 장애자만 남아 있는 섬에 도달했고,
알고 봤더니 그 약혼자가 갖고 있던 족보 뒤에 나온 글이 보물이 숨겨진 곳이었더라!가 되어 암호를 풀고 보물을 찾다 미로에 갇혀 죽을 뻔 했지만 결국 구출되어 주인공은 해피엔딩. 이라는 것.

밀실 살인의 트릭은 상당히 간단했습니다. 싱거웠을 정도. 게다가 초반에 풀리고요.
그보다 이 소설의 초점은 역시나 그 살인자의 광기와 그 광기로 인한 피해자들과 미로에 갇혔을 때의 절망에 맞춰져 있군요. (나중에 후기 보면 이것은 에도가와의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라는 글이 나옵니다.)
그래도 추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듯 암호풀이->보물찾기라는 도식을 그대로 갖다 쓰더군요. 일부러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를 언급하면서까지. (언급하지마)
그래서 뭔가 어정쩡. 본격 추리물과 이상심리와 서스펜스 사이에서 떠도는 느낌이라 그다지…
게다가 마침 죽은 약혼자는 의사와 그런 관계였고 죽은 탐정은 약혼자의 어머니와 그런 관계였고.. 우연성이 너무 짙어서 그리 좋은 작품이라고는 하지 못하겠군요.

…..사실 이런 것보다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주인공은 총수(受)였다.

농담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인공이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총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남자들에게 그런 눈길로 보여질 만큼의 외모라는둥, 실은 그 아마추어 탐정도 자신에게 이상한 감정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는둥, 더 자세히 말하면 고인에게 모독이 되거니와 스토리 진행과는 관련 없으므로 이 정도로 하겠다는둥, (말하란 말야)
게다가 그 의사씨가.. 주인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죽은 약혼자에게 대쉬를 하질 않나, 함께 미로에 갇히니까 이 대자연에 너와 나 단 둘뿐이다, 남이 정해놓은 가식 따위 생각치 않고 자연체로 살자고 덥치질 않나, 죽을 땐 처음 보는 부모도 거들떠 보질 않고 주인공의 편지를 안고 이름을 외치며 죽었다질 않나…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하라니까, 궁금하잖아. 랄까, 이거 20세기 초반 작품일텐데, 과연 일본.

..이라는 게 최종 감상이었다는..^^; 서스펜스라기보다 BL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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