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신사 – 불온의 땅 아소

2019년 구정 연휴에는 쿠마모토에 갔습니다.
그 중 하루는 아소에 분화구를 보러 갔고요.
그런데 도검난무..를 조금 하다 말았는데, 거기 나오는 호타루마루가 있는 곳이 아소 신사더군요. 호타루마루는 나름 귀여워서 넨도도 갖고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가봤습니다.

원래 쿠마모토에서 아소에 가는 JR이 있었습니다만, 2016년의 쿠마모토 지진 때문에 아소에 깔린 철로가 망가져서 그 당시에는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JR이 복구되어서 다시 다니고 있네요.

2월 4일에 시외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예약을 안 해서 자리가 없음 -> 다음 버스 대기 중에 문득 분화구 공개를 하기는 했나 싶어서, 시외버스 안내하시는 분께 아소 분화구 열렸는지 여쭈었으나 모르셔서(생각해보니 알 이유도 없나) 공중전화로 전화했습니다. 다행히? 그 날은 분화구 상태가 위험해서 열지 않았다고 하네요(전화위복).
일본에서 공중전화 처음 써 봤어요. 거스름돈 먹혔어요….

매일 아침 8시? 9시?에 아소화산 화구 규제정보에서 그 날 아소산 분화구를 공개할지 안 할지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9시 반 버스인가를 타고 출발.
아소에 접근하면 산지가 나오는데, 겨울이라 풀들이 죄다 시들어있는 건 당연하지만… 산에 나무 하나 없는데다가 흙이 검어서 매우 이질적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아 이것이 화산지의 모습이구나! 하고 압도되어 있는데, 갑자기 건너 자리에 앉은 중년 여성분이 저에게 한국어 -> 중국어로 번역된 ‘버스비 어떻게 내요?’라는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3초 동안 로딩 후)…저 한국인인데요..”
“아 한국인이에요? 잘 됐다! 돈 어떻게 내요?”
“버스 탈 때 정리표 안 뽑으셨어요?”
“그게 뭐에요?”
“…어디서 타셨어요?”
“쿠마모토역이요.”
“내릴 때 기사한테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님은 어떻게 내세요?”
“저는 교통카드가 있어서”
“오- 여기서 일하세요?”
“아뇨?”
“화산 보러 가세요?”
“저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요”
“왜 거기 내려요?”
“신사 가러(정말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음)”
“그렇구나.. 같이 다니면 좋을텐데(누굴 공짜 가이드로 써먹으려고…). 가족들이 안 간대서 나 혼자 나왔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분은 먼저 내리고(내릴 때도 만 엔짜리밖에 없어서 운전사가 거슬러줄테니 그 돈 달라고 하는 말이 안 통해서 운전석까지 끌려갔다 옴.. 그리고 귀국하는 비행기 대기하다가 먼 발치에서 봄…)
저는 그 다음 정거장인 宮地에서 내렸습니다. 여기에서 아소 신사까지 걸어서 15분.

아소 신사 역시 3년 전의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중이라 공개된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진도 찍어둔 게 없네요.

고슈인을 받고 근처 상점가를 산책하고 있다 시내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기로 한 이마킨 식당으로 이동. 아소를 크게 횡단하면서 갔습니다.
버스에 저 혼자 타고 있었고요.
아소 시내 버스도 ICOCA가 되기는 하는데 쓰는 사람이 잘 없는지 제가 카드 들고 있는 걸 보고는 잠깐 찍지 말라고 하고는 기계를 부팅? 위치 세팅?을 하시더라구요…

하여간 버스를 타고 인스타에서 봐둔 아카우시(赤牛) 규동을 파는 이마킨 식당에 갔습니다.
유명 인스타 맛집답게 2명 이상이 가면 1시간은 가볍게 대기를 타는 거 같은데, 저는 혼자라 그냥 1자리 날 때 끼어먹어서 15분 정도 기다린 거 같아요.

그냥 맛있는 미듐 레어? 스테이크동이었습니다.
1시간 이상 기다릴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그 동네에 딱히 다른 맛집이 있는 거 같진 않아서.

주문할 때 赤牛를 아카규라고 읽었더니 아카우시라고 정정해주시더군요.
빨간 소라니 털색이 어떤 거지? 하고, 그런데 그 날 버스 타고 아소를 싸돌아다녔지만 소를 못 봐서 사진으로 봤는데 그냥 평범한 황소인데? 싶었는데 실제로도 아카우시는 한국에서 데려온 황소가 베이스가 된 품종이라고 합니다.

아카우시동을 잘 먹고, 역시 버스가 오기까지 30~40분을 동네 산책을 하고 있으니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화산재;;;
아소 일대가 산지에 둘러싸인 초원이라, 풀들이 파란 봄철에 오면 방목된 소나 말도 보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간 건 겨울이고 풀들이 말라있는 초원인데 하늘에서 화산재가 날아오니 뭔가… 겉보기에 목가적인 척 하는 불온한 땅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사도요. 늘 신사는 한적하고(사람 많은 유명 신사 제외) 그런 곳인데 아소 신사는 정 반대. 참배객이 적지는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다시 아소역으로 향합니다. 아소역에서 화구까지 운행하는 셔틀이 있어서 그걸 타고 출발.
겨울에만 그런지 볼라도 수증기 때문에 안이 잘 안 보이는데, 가끔 바람이 불어서 수증기가 걷히면 안에 살짝 보이는 물색이 옥색이라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오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녀온 2월 5일 이후 또 분화구가 심상치 않아져서 몇 달간 출입 금지가 되었다고 하네요.

셔틀이 시외버스 다니는 시간이랑 연계되어 있어서, 다시 아소역으로 내려온 후 대기하고 있던 시외버스를 타고 JR이 다니는 곳까지 온 다음, 영화관 있는 역까지 JR을 타고 가서 사이코 패스 Sinners of the System Case 1을 보았습니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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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네 신사에 이어 이번 편도 파란만장 하군요. 더불어 어딜가나 같은 동족을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은 존재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전 도쿄에서 한국인 일행이 번역기 써서 지리 물어보길래 일본어로 잘 모른다고 내뺐는데 나중에 또 우연히 마주쳐서 어떻게 하다 한국말로 가르쳐 줬더니 엄청 반가워 하면서 붙어 먹으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또 내뺐죠.
열심히 읽다가 마지막에 사이코패스 이야기가 나오니 아련모드. ㅎㅎ

갑분사이코패스 ㅎㅎ
저는 아직도 의아한 게, 처음에 절 중국인으로 생각했으면 일본인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왜 같은 외국인인 중국인에게 물어보려 했느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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