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하치만구 – 코쿠라오리와 하치만구

때는 올해 초.
인스타 알고리즘이 저에게 기타큐슈 관광 계정이 올린 모지코 레트로의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모지코 레트로는 큐슈와 혼슈 사이의 간몬 해협에 위치한 작은 항구로서, 옛 건축물들을 복구해서 관광구역으로 꾸며놓은 곳이에요.
다음에는 좀 소도시로 가고 싶은데 어디로 갈까 하던 차에 알아보니 신칸센을 타면 하카타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있고.
그래서 이번 여행지로 채택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검색하니, 기타큐슈시에는 코쿠라오리라고 해서 코쿠라 지방에서 만들던 비단이 전통공예물로 (근근히)남아있다고 하더라구요.
무기가 잘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강도를 자랑해서 갑옷 밑에 받쳐입었다나 뭐라나. 공정상의 이유인지는 몰라도 저 세로줄의 무늬가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좀 사볼까? 하고 찾아봤지만 워낙 만드는 곳이 적은 거 같기도 하고 예쁜 것도 안 보이고.. 그러다가 저 코소하치만구(甲宗八幡宮)에서 공예작가와 콜라보해서 내놓은 고슈인첩을 발견하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이미 신에게는제게는 뜯지도 않은 새 고슈인첩이 두 권이나 있는데…
또 저곳이 하치만구라는 것도 가기를 꺼리게 되는 요인이었습니다.

*

그럼 하치만구란 무엇인가?
하치만신을 모시는 신사로서 일본의 신사 중에 가장 많은 수의 신사입니다(세는 방법에 따라 이나리 신사가 제일 많다고 하기도 함).
하치만신은 원래 큐슈 지방의 토착신이지만, 그게 어느샌가 15대 천왕인 오진천왕과 동일시되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오진천황 자체는 무슨 훌륭한 치세를 했던 거 같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신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출생비화에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신공황후는 14대 천황이 죽은 후 섭정이 되어, 백제를 정벌한 후 신라와 고구려에게 항복을 받아냈다는 삼한정벌론의 주인공이죠(….).
백제를 정벌하던 중 산기를 맞은 신공황후는 일본에 돌아간 후 아들을 낳기 위해 산도를 돌로 막은 후 1년 후 일본에 돌아와서 아들을 낳고, 후계자 싸움에서 이긴 후 아들을 15대 천황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나고 결국 천황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하치만구는 주로 난문통과 입신양명 이런 걸 바라는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나요.
그래서 오진천왕을 모시는 하치만구는 신공황후도 세트로 같이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저 코소하치만구는 신공황후가 썼다는 가부토가 신체라고 합니다;

삼한정벌론이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라는 건 일본 사학계도 인정한다지만, 여튼 하치만 신앙은 많이 퍼져있고, 저는 그걸 모르고 카마쿠라의 츠루오카 하치만구에서 이미 고슈인을 받았고.
(하치만신에 대해서는 전에 대마도 가면 뭐 할까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갈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가기로 결정.
5월 12일에 키타큐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어서 다음날 가기로 했는데, 다음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고슈인 받으러 돌아다니는 건 14일에 하자… 고 결정했지만, 저 고슈인첩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이 쓰여서 저 신사만 13일에 갔습니다. (인스타 보면 가끔 품절일 때가 있다고 해서)

모지코 레트로에서 1km 북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그렇게 안 보이지만 비가 오고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경전이 나오는 자그마한 신사.
골든 위크 때에는 하나쵸즈(花手水, 신사 입구에 손 씻는 곳에 꽃들을 잔뜩 띄워놓는 것으로 코로나 시기쯤 부터 유행인 듯)가 있었던 모양인데 이 날은 다 치웠는지 없었어요.

다행히 고슈인첩은 있었고요… 다섯 가지 색상이 있습니다.

새 고슈인첩에 받는 고슈인.
여기 고슈인도 디자인이 세 가지라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데, 두 가지가 가부토 스탬프고 하나가 저 새 스탬프라 당연히 새 스탬프로 받아왔습니다…
고쿠라오리로 만든 부적도 예뻤으나 부적류는 잘 안 사서 패스. 가부토 모양의 부적도 있습니다…

고슈인을 받은 후 내려오는 길에 경내도 살짝 둘러보기.

뭔가 한 자리에 모아둠. 저 중 하나가 타이라노 토모모리의 묘라고 하네요.

비 내리는 거리를 산책하며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모지코로 내려오는 중간에 이데미츠 미술관에서 당삼채唐三彩 전시를 하길래 그걸 보고, 극장판 PSYCHO-PASS PROVIDENCE를 보러 코쿠라로 이동했습니다…

*

1. 지금까지 제가 SNS에 올린 고슈인첩 중에 가장 핫한 반응을 부른 고슈인첩..

2. 근데 모지코 가보니 여기저기에서(심지어 스벅에서도) 코쿠라오리를 팔던데, 그것들은 만져보면 비단이 맞는데 저 고슈인첩은 만져보면 그냥 천이더라구요…
뭐 아무렴 어때요, 예쁘면 됐지!!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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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를 돌로…?;;

고슈인은 스탬프 랠리보다 모일 때 뿌듯함이 좀더 클 것 같아요.
저 고슈인첩 너무 예뻐요. 재질이 뭐 중요한가요. 예쁘면 됐지!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인상을 지닌 곳이라 하더라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으면 되겠죠. 그나저나 이 고슈인첩은 다시 봐도 아주 멋스럽네요. 색조합이 탁월한 것 같아요. 안그래도 사진 올려주실 때 응용해서 써먹어 보고 싶더라고요.
흥미진진한 여행기 넘 재미있네요. ㅎㅎ

오오, 혹시 다시 노트 표지 꾸미기에 도전을 하시는? *_*
저 모양 천이 있다면 저도 사고 싶어질 거 같아요 재봉할 줄 모르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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