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네 신사, 쿠라마데라 – 교토의 북쪽에서 등산을 하다

최근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라는 걸 하더라구요.

그럼 전 외국에 있는 장소들 중심으로 포스팅을 할까 ->
2015년 이후 일본만 줄창 갔는데 일본 여행글은 흔하다는 핑계로 안 썼음 ->
그럼 고슈인을 테마로 신사 하나하나를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 일본 절/신사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크게 할 말이 없거나 너무 유명한 곳은 패스할 거지만요.
그럼 지금까지 고슈인 받은 곳이 94군데니까 그 중 한 열 곳은 나오겠지? (어이)

처음으로 올릴 곳은 2019년 12월 14일에 다녀온 교토 북쪽의 쿠라마 지역입니다. 네 코로나 이전이지요.. 이 때 쓰던 여행 노트가 지금 행방불명이라 세부 가격이나 시간대가 틀릴 수 있습니다.

*

교토의 북쪽에는 쿠라마(鞍馬)산이라고 해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어릴 적 텐구에게 검술인지 병술인지를 지도받았던 것으로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텐구가 산다는 전설이 있는 산.

단지 느려터진(…) 교토의 대중교통 탓인지, 교토 시내여도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 일정을 다 써야하는 곳이라 큰 맘을 먹지 않으면 의외로 안 가게 되는 곳이지요.

그래서 딱 한 번 다녀오기로 했는데.. 여튼 이곳을 가기로 한 이유는,
이치자와 한푸에서 B6 크기의 고슈인첩용 파우치를 기후네 신사(貴船神社) 한정으로만 팔기 때문입니다. (이치자와 한푸 점포에는 A5 크기만 파는)
게다가 온고잉인 단색 말고도, 계절에 따라 한정 무늬를 따로 팝니다. 제가 간 건 늦가을(단풍철 직후)이었기 때문에 단풍 무늬가 있었어요. 단색보다 500엔인가 1000엔인가 더 비쌌습니다. 근데 사 놓고는 막상 집에서는 안 써요. B6 두 권 넣으면 너무 꽉 끼어서.

대중교통으로 쿠라마에 다녀올 때는 쿠라마 기후네 당일치기 티켓을 사는 게 좋습니다.

쿠라마에 가기 위해서는
1. 버스를 타고 게이한 전차의 기온시죠역에 간다(여튼 게이한전차역)
2. 기온시죠역에서 데마치야나기(出町柳駅)역까지 게이한 전차를 타고 간다
3. 게이한 데마치야나기역을 나와 에이잔 데마치야나기역으로 들어간다(거의 옆건물)
4. 데마치야나기역에서 기부네구치(貴船口)역까지 에이잔 전차를 타고 간다
5. 기부네구치역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올라오면 기후네 신사 도착

이 과정을 저 1일권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용횟수는 왕복 한정이 아니라 자유라고 하네요.
버스 1일권처럼 내릴 때 기계에 넣으면 뒷면에 날짜가 새겨집니다.
IC 카드 태그 or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는 에이잔 전차를 먼저 탈 경우에는 직원이 뒷장에 날짜를 써주는 모양.
미리 뒷장에 쓰고 에이잔이든 버스 기사에게든 보여줘도 되겠죠.

*
여튼 먼저 기후네 신사로 갑니다.

기후네 신사에서 모시는 것은 이자나기의 아들인 타카오카미라는 신으로서 물 공급을 관장한다고 힙니다. 진무천황의 어머니인 타마요리히메가 노란 배를 타고 올라오다가 여기 내려서 그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귀한 노란 배라는 뜻에서 저 한자가 붙은 모양.
쿠지 중에 종이를 물에 띄우면 종이가 젖으면서 글씨가 보이는 게 유명해서 제 동행은 하셨고 저는 패스…

이곳은 고슈인첩을 맡기면서 번호표를 받았다가 호명되면 받아가는 시스템입니다. 기후네 신사 본궁의 고슈인은 붓글씨를 써주는데 오쿠미야奥宮은 종이로 주더라구요. 둘 다 받았습니다(오쿠미야의 고슈인도 본궁에서 받아야 함).

奉拝 대신 수신이라고 써 있음.
쿠지를 물에 빠뜨리며 기다렸다가 고슈인도 받고 파우치도 사고.
오쿠미야의 고슈인도 받았기 때문에 오쿠미야도 가봅니다. 800미터를 걸어 들어갑니다.
걸어가는 중간 예뻐서 찍은 이끼.
저 안이 奥宮.
헤이안 시대 중반까지는 오쿠미야가 본사였다고 합니다.
오쿠미야 다음에 한 군데 말사가 더 있긴 한데 거긴 고슈인 안 받았으므로 패스(…).
기후네 신사를 다 봤으면 다음은 더 북쪽에 있는 쿠라마데라에 갑니다.

원래 여기를 가려면, 에이잔 기부네구치역으로 다시 내려와서 -> 쿠라마역까지 에이잔 전차를 타고 올라와서 -> 등산을 하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 됩니다만,
기후네 신사에서 기부네구치역쪽으로 가다가 쿠라마데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산길이 있습니다.

쿠라마데라로 빠지는 길(아직도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안 나옴)

이미지 출처: 쿠라마데라 공홈

구글맵에서는 이게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안 알려주지만,
일단 기후네 신사도 산 속이고 쿠라마데라도 산 속이니까 산을 가로질러 넘어갈 때 별로 안 올라가겠지! 지도로 봐도 뭔가 쉬워보인다!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기후네 신사는 해발 300m, 저 코스 최고봉인 奥の院은 해발 438m… 코스 초반에 138m를 가파르게 올라간 셈 ㅡㅡ;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 코스는 주로 쿠라마에서 기후네로 빠지는 용도로 주로 걷는 거 같더라구요. 그게 더 내려가는 길 위주라 편하니까.
(참고로 저희가 간 2019년은 저 코스에 대해선 별로 자료가 없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일본도 한국도 많네요 ㅡㅡ+)

당시의 체감으로도 100m 가량은 올라갔다 싶었어요.
138m는 하이킹에 익숙한 상태라면 별 게 아니지만
일단 우리는 이렇게 산을 탈 줄 몰라서 점심을 대충 빵으로 때운 상태였고(산에는 잘 챙겨먹고 올라갑시다)
게다가 산에 들어가니 여우비가 와서(텐구가 사는 산은 다르다)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었습니다.

여튼 저 산길이 전부 쿠라마데라에 속한 곳이기 때문에, 산길 들어서면서 바로 통행료..가 아니라 산입장료(愛山費)를 내고, 지팡이를 빌릴 수 있어서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기 시작.
중간중간 뭔가 볼 거리가 있지만(우시와카마루가 수련했다는 곳 등등) 비가 오니 그냥 빠르게 지나갑니다.

보통 절은 5시에 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산 속이라 그런지 현재는 4시 15분에 닫는 모양.
우리는 일단 문 닫기 10분인가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우리 보는 앞에서 본전 문을 닫으려 하기에 서둘러 들어가서 불상 보고 받을 거 받고,
저 먼저 나와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제 등 뒤에서 닫히는 본당 문.

…동행이 아직 안에 남아있는데??

결국 관계자용 뒷문으로 나오셨습니다.
절 직원이 빨리 퇴근하고 싶었던 건가 ^^;;;

뭐라고 써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절이 문을 닫아서 당연히 케이블카도 문을 닫음.
하지만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져서, 뜻하지 않은 라이트업을 보면서 내려왔기에 그건 괜찮았어요.

쿠라마역까지 내려온 후에는 교토 유일의 천연 온천이라는 쿠라마 온천 여관으로 향했습니다.
송영 버스가 있어서 역와 온천 사이를 왕복합니다만 코로나를 거치는 동안 여관이 문을 닫았군요.. ㅠ_ㅠ

여튼 산에서 내려왔고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하니 밥을 먹고

유도후 정식.
이 온천을 이용하는 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제 돈 내고 실내/노천 온천을 다 쓰거나
돈 적게 내고 노천온천만 쓰거나(대신 타월이니 이런 거 안 내줌)여서
뭐.. 두 온천을 다 썼습니다. 실내탕을 전세 내고 쓰다가 노천 온천으로 나왔는데 예뻤습니다.

7시인가 8시에 문을 닫아서 마감 시간까지 즐겨주고 쿠라마역으로 송영버스 타고 나왔습니다.

전차 기다리는 동안 찍은 쿠라마역의 텐구들.

다시 에이잔 열차->게이한을 타고 내려와서 카모가와 강가의 스벅에서 카페인을 보충한 후, 동행분은 호텔로 쉬러 들어가시고 저는 MOVIX 교토에 가서 마침 재상영중이었던 Free! 대학생 총집편을 보고 왔습니다.

근육남 사이의 포포.

*

1. 貴船는 원래 기부네라고 읽기 때문에 지명이나 역명은 기부네라고 읽지만 저 신사는 ‘맑은’ 물의 신의 신사이기 때문에 신사는 기후네라고 부른다네요.

2. 여튼 저희는 마지막 목적지가 쿠라마 온천이었기 때문에 기후네->쿠라마로 갔지만 온천도 없어졌겠다, 가시는 분은 쿠라마->기후네로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모시는 신의 급으로 따져도 그 순서가 맞다는 거 같네요.

4 Comments

Add Yours →

고슈인 받은 곳이 94군데라니, 일본인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뭔가 하나의 테마로 따라 가는 여행 너무 좋아 보여요.
그나저나 저기는 가실 때는 인터넷에 글도 없었다니(어지간하면 뭐라도 나오던데) 정말 개척지 시절에 다녀오신 거네요. ( ”)

절이나 신사가 94군데인 건 아니고,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같은 곳은 고슈인 주는 포인트가 세 개라서 실제로 절/신사 수로 세면 저보단 많이 적을 거에요 >_< 저 길을 걸었다는 사람이 일본 야후에서 검색해도 두세명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다들 길이만 얘기하고 높이가 어떤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서! 이번에 포스팅 하면서 찾았는데도 안 나와서 기후네 신사 높이 따로 쿠라마데라 높이 따로 검색해야했습니다.. ㅠ_ㅠ

와, 쓰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사진 설명이 없었으면 근육남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포포를 못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미안하다 포포.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시선을 사로잡는 이끼 사진!! 새삼 이끼가 저렇게 근사한 식물이었나 돌아보게 하네요.
날씨며 시간대며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으셨을 것 같아요. 실감나는 여행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