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슈인과 고슈다이에 대해

2018년부터 제가 일본에 가면 하는 것 중의 하나. 고슈인 메구리(御朱印巡り).
원래 고슈인이란 절이나 신사에 필사한 경전을 바치는 것에 대한 증서였는데 현대에 와서는 참배(2절 2박수 1절)의 증서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모으는 게 붐을 일으키면서 고슈인 모으는 것을 고슈인메구리, 그리고 고슈인메구리를 하는 여성을 고슈인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뭐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유료 스탬프 투어 같은 거죠. 점점 젊은 층이 종교 쪽에 돈을 안 쓰게 되니(특히 절 쪽이 심하다 그랬나?) 이런 식으로 길을 넓힌 것이고,

한쪽에서는 유료 스탬프가 아니니까 참배 제대로 하라고 안내문을 붙이는가 하면(고슈인이 아니라도 돈이 잘 모일 거 같은 유명 신사)
한쪽에서는 시즌 한정 고슈인이니, 그림이 들어간 고슈인이니, 키리에(切り絵) 고슈인이니를 만들어서 여러 번 오게 하고 있죠(한정의 민족…).

일단 저도 남의 종교(내 종교도 없지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 2절 2박수 1절은 하고 받고 있고, 신사의 경우에는 누굴 모신 신사인지도 사전 조사를 합니다.
야스쿠니 신사라든가, 가토 신사(쿠마모토성 근처에 있는 가토 키요마사의 신사) 같은 데에서 참배할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걸 제끼고 생각하면, 한국의 33 관음 성지와 마찬가지로
일본 여행에서 동선을 정할 하나의 기준으로는 제법 괜찮습니다.
단지 교토나 가마쿠라처럼 신사나 절이 발에 채이는 곳은 자칫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기 때문에(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현타가 오기도 함) 그 점은 조심해야.

위에 유료 스탬프라고 썼듯이 공짜는 아니고 주로 300엔이나 500엔을 내고 직접 붓글씨를 받거나, 미리 써져 있던 종이를 받거나, 붓글씨 모양의 스탬프를 받거나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직접 써주던 신사도 스탬프로 바꾸는 방향으로 가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 축의금을 3이나 5로 시작하는 금액으로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300엔 아니면 500엔이 대부분인데 저번에 처음 교토 신센엔(神泉苑)에서 400엔을 받아서 놀랐음..

그 외 키리에라든가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곳은 1000엔을 받기도 하고.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곳은 고슈인첩과 택배봉투를 같이 맡기면 일러스트를 그린 후 택배로 보내주는 곳도 있습니다(두 번 해봤다).

*

제가 가진 고슈인첩. 세 권은 다 썼고 두 권은 새 것.
고슈인은 아무데나 받는 게 아니라 고슈인첩이라는 데에 받는데,
크기는 통상 B6와 A6.

그리고 고슈인첩 안을 보면 한지 두 장을 겹쳐서 쟈바라(蛇腹).. 병풍처럼 접는 구조인데 양면 다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단면만 쓰지만요.
예전에는 和綴じ(아웃스티치?) 방식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저는 본 적이 없는.
다 쓴 고슈인첩을 펼치면 붓글씨 가득한 페이지가 펼쳐지는 게 장관이라 멋있습니다. 저게 다 돈인데 라는 생각도 들지만 ^^;

그 외에도 키리에 고슈인이나 미리 써진 종이로 배포되는 타입의 고슈인을 위해 클리어 파일처럼 나온 고슈인첩이나, 두 페이지를 써서 그림을 그려주는 고슈인을 위해 나온 두 배 크기의 고슈인첩 도 있지만 기본 크기는 역시 A6과 B6.

신사와 절과 니치렌종에서 받는 고슈인(고슈다이)은 전부 분리된 책에 받는 게 원칙이라지만 딱히 다들 지키지 않는 듯. 하지만 저는 (밑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셋이 구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분리해서 받는 편입니다.

*제일 왼쪽이 기본적으로 신사에서 받는 타입의 고슈인입니다.
우측 위에 奉拝, 가운데에 신사명, 좌측 아래 참배 일시가 붓글씨로 써 있고 가운데와 우측 상단에 붉은 인장이 들어가죠.

제일 왼쪽 고슈인이 처음 받은 다자이후 텐만구의 고슈인.
하지만 이세 신궁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도 첫 두 페이지를 비우고 세번째 페이지에 받았습니다. 근데 이세 신궁 고슈인은 지금 보면 디자인이 간단하네요 ^^;
그리고 이세 신궁 참배는 외궁->내궁 순인데 고슈인첩에는 외궁을 2페이지에, 내궁을 1페이지에 써주신.

*절의 고슈인입니다.

정토진종, 일련종(니치렌종), 일련정종을 제외한 절들에서 고슈인을 받을 수 있지만,
일본의 절이란 것이 장례식과 묘 관리(…)가 주된 업무인 작은 절들도 있어서 그런 곳에서는 고슈인이 없기도 하다네요.
또 절에 따라 御朱印이 아니라 御集印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빨간 인장은 셋(한국의 33 관음이랑 동일하네요).
가운데에는 범어나, 모시고 있는 신불의 이름(불상이 여러 개 있는 절의 경우 가운데 들어가는 불상의 이름을 지정해서 받는 경우도 많음), 우측 위에 奉拝, 우측 아래에 참배일, 좌측 아래에 절 이름이 들어갑니다. (산 이름이 같이 들어가기도 함)
신사의 고슈인에 비해 좀 복잡하죠.

사진은 왼쪽은 교토의 타코야쿠시.
오른쪽은 교토의 신센엔…의 아홉 신불 중에 善女龍王을 지정해서 받았습니다. 근데 참배일 위치가 다르네요.

참고로 정토진종에서 고슈인을 안 받는 이유는 신자가 구원을 얻기 위해 수행할 의무를 지우지 않아서라는군요… 신자들 편하겠다…

*니치렌종에 속하는 절들은 고슈다이(御首題)라고 해서 가운데에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이라고 써 있는 고슈다이를 써줍니다.

일본 불교에서의 니치렌종의 위치는 전공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부처가 아닌 니치렌이라는 승려의 말을 중시하는 종파라니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이 되고.. 그래서 고슈다이가 적힌 고슈인첩에는 고슈인을 쓰는 것을 거부하는 절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니치렌종이라고 해도 고슈다이가 아니라 고슈인을 적어주는 절도 보았구요(요전에 간 도쿄 타이토구의 이치죠지. 사진의 고슈다이를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저 南無妙法蓮華経의 필체는 지정이 되어 있는지 모든 절에서 내주는 고슈다이의 필체가 똑같더라구요.
그리고 저렇게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고슈인을 내놓은 절에 니치렌종이 많은 듯(하긴 나도 고슈인 아니면 니치렌종의 절에 갈 일이 없으니).

6 Comments

Add Yours →

오… 스탬프가 아니라 붓글씨라서 다 모았을 때 왠지 더 보기 흐뭇하겠는데요. *.*
한번 받기 시작하면 더 욕심날 거 같아요.

월간 교토에서 고슈인 특집이 나올 때마다 늘 삼끼 님이 떠오릅니다. 가지각색의 고슈인첩을 보면서 이런걸 좋아하실까 요걸 좋아하실까 상상하는 것도 잡지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죠. 사실 전 고슈인첩이나 고슈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일웹 검색하다 고슈인 이야기가 나오면 주의깊게 봅니다.
이토록 멋진 글씨라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막상 저는 월간 교토에서 고슈인이 테마면 그 호는 넘어가는데 (주로 인스타로 찾아보니까..).. 제가 디멘티토님에게 각인?이 되어 버렸네요 ㅎㅎㅎ 같이 하시죠!(응?)

겐쿤 신사 (오다 노부나가) 는 따로 문제가 있을까요?
오다 노부나가는 우리나라랑 엮인 문제가 딱히 없는 걸로 아는데 ..

말씀하신대로 조선이랑 관계가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별개로 저는 일본인의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좀 거북해서 중근대 인물을 모시는 곳은 그냥 안 받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보니 겐쿤신사를 제가 본문에 쓴 거였군요. 수정해야겠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