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하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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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있는 호스피스에서 나는 어릴 적 고원에서 함께 놀았던 소녀와 재회, 그녀는 벌레를 한 마리 한 마리 눌러 죽이듯 자수를 하고 있었다―. 천식 환자인 나는 세번째 화요일에 모르는 남자에게 안겨, 발작이 일어난다―. 숙주를 발견하면 눈알을 버려버리는 기생충 처럼 살아가려 하는 여자―. 죽음, 광기, 기이가 들어앉은 아름답고도 두려운 열 개의 「잔혹 이야기」.

*

 “그들은 너무나, 기세 좋게, 한결같이 살고 있어.”
시트는 땀에 젖어 축축했다. 커튼 사이에서 샌 햇살이, 둘 사이에 띠를 만들고 있다.
“알에서 막 부화한 무렵에는 제대로 눈을 갖고 있어. 빛을 갖다대면 모여드니까. 하지만, 기생하려는 물고기를 찾아서, 제대로 붙게 되면, 일단 눈알을 버려.”
나는 그의 가슴에 볼을 댄 채 말했다. 입술에서 체온이 전해져왔다.
“아무 미련도 없이, 선뜻. 바다 속엔 말이지, 그런 식으로 버려진 기생충의 눈알이 몇 개나 떠돌고 있어.”

*

“네가 빼준 태엽선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중략)
“그 대신 당신은 영원을 손에 넣은 거야.”
“영원?”
신비한 울림의 단어를 들은 듯 나는 되풀이했다.
“그래. 영원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손에 넣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수면을 떠도는 차가운 공기에 스며들었다.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 받은, 시간에 관계된 정보를, 태엽선은 관장하고 있어. 시각, 요일, 일자, 기한, 시대, 과거, 수명, 미래… 그것들로부터 당신은 해방된 거야.”

*

생각보다 안 잔혹해..
오가와 요코의 1996년도 작품.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입니다.
이 작가의 초기작에는 좀 잔혹하거나 SM적인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잔혹한가 싶은 이야기는 저 기생충 운운하는 단편에만 나와서 실망.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조금 기이한 사람들의 이야기 + 페티시즘적인 이야기를 관조적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쓰니 정말로 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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