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의 손가락이, 귀 뒤의 작은 언덕에 닿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일단 언제나의 손놀림으로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한 방울의 향수로 검지를 적셔, 다른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올리고, 내 몸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를 만졌다― 공작의 깃털, 기억의 샘, 조향사, 수학문제…몇 가지의 키워드에서 죽은 이를 방문하는 수수께끼 풀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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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 1998년 작품.
조향사였던 남자친구가 자살합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저 약간 강박적일 정도로 정리정돈에 능하고, 암산이 뛰어났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같이 사는 나는 왜 몰랐는지, 남자친구는 왜 자살을 했는지, 그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례식때 처음 만난 남자친구의 남동생과 함께 하는 내용과, 남자친구가 고딩학생 시절 결정적으로 변한 계기가 된 듯한 장소인 프라하에 찾아가 그의 자취를 찾는다는 내용, 양 사이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프라하의 관광에는 참고가 되지 않을 거 같지만요.
정돈된 상황의 아름다움, 수학의 아름다움, 남자친구의 시체를 보고 미이라로 아름답게 보존하고 싶다고 바라는 욕구.. 오가와 요코의 타 작품에서도 자주 나왔던 소재입니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그러면서 어딘가 집착하고.
그런데도 초반은 좀 지루하더라구요. 대부분이 이미 죽은 남자친구의 과거를 찾는 것 뿐이고 뭔가가 (느릿하게나마)진행한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럴라나.
신에게 축복받은(특히 수학에 있어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남자친구가, 그 자신도 약간 강박적이랄까, 예정조화에 따르는 성격이었데 어머니의 맹목적인 기대에 조금씩 뒤틀리다가 끝내 수학의 길에서 벗어났고, 주인공과 만나서 동거를 시작한 후에도 결국 하나의 어긋남을 어쩌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려나요. 솔직히 남주는 이해 못 하겠음 ㅡ_ㅡ;
그리고 직전에 읽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돌고래에서는, 동물의 박제를 ‘무언가 사악한 것’이라고 하면서 땅에 묻은 후 제(?)를 치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작가 작품에서는 오히려 집착하죠, 박제… ‘귀부인 A의 소생’ 에서는 주요 소재였고. 서로 반대되는 입장인 작품을 나란히 읽어서 나름 신선했달까.
오가와 요코도 한동안은 피하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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