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기억은 문득 떠오르는, 잊기 힘든 것. 인기 작가 8명이 “기억 속의 잊기 힘든 향기”를 테마로 경쟁. 당신 안의 소중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호화 앤솔로지. 자, 8개의 문 어디에서든지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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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테마가 ‘향기의 기억’이라는 데 끌려서 집어들었습니다.
냄새를 맡는 신경(1번 뇌신경)이 뇌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냄새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력한 기억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향기의 기억.. 뭔가 아련한 내용이려나! 싶어서 잡았네요. 읽어보니 의외로 향기뿐만이 아니라 그냥 추억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요. 2007년 9월 14일부터 2008년 10월 30일까지 Key Coffee 주식회사의 사이트에 공개된 단편을 묶었다고 하네요.
앤솔로지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면 좋겠다는 심정 반으로, 가끔 떠오르면 집어드는데 아직까지 이거다! 싶은 작가는 없더라구요. 원래 체크했던 작가는 몰라도.
1. 이시다 이라, 꿈의 향기
그러고보니 이시다 이라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던 듯?
주인공은 어릴 적 단 한 번 꿈에서 맡은 남자의 향기를 잊지 못해 이후 사귀는 남성의 냄새를 맡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맡은 그 냄새를 찾아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왠지 모르게 그 냄새가 나는 남성은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는 예감만이 남는데…
2. 가쿠다 미쓰요, 아버지와 껌과 그녀
초등학생때 자신을 돌봐준 ‘하치코’상을 부친상에서 만나게 되는 화자. 지금 생각해보면 하치코상은 아버지의 정부였지만, 아직 어렸던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하치코상은 특별한 존재고, 그녀가 자주 씹었던 풍선껌 향기 역시 특별한데…
3. 슈카와 미나토, 이치바도지
슈카와 미나토가 이런 한자를 쓰는군요; 포스팅 할 때까지 몰랐(;;;)
이 작가는 ‘꽃밥’을 포함, 한국에 소개된 단편집을 두 권 읽은 게 전부입니다만, 약간의 판타지가 섞인 힐링계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이치바도지도 엇비슷하더군요.
이치바도지란, 시장에 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요괴로서, 자시키와라시와 비슷하게 그 시장에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요괴입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은 집 가까이 있는 재래시장에 곧잘 나가는데, 시장에서 풍기는 다양한 냄새-생선 가게의 비린내, 튀김 가게의 기름냄새 등등-와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에 익숙합니다. 심부름을 하다 우연히 가게를 지키는 이치바도지와도 알게 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재래시장 근처로 고속도로가 뚫리게 되면서 시장은 존속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4. 아가와 사와코, 당신
결혼식 피로연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과 밀고 당기며 사귄다는 이야긴데.. 냄새에 대해선 안 나오네요…?
5. 구마가이 다쓰야, 록과 블루스로 돌아가는 밤
일을 위해 들른 도시에서 우연히 재수생 시절 자주 찾았던 카페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방문하는 이야기.
6. 고이케 마리코, 스완 레이크
우연히 죽은 남편과 함께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고, 그 추억의 장소(백조의 호수…)에 찾아가는 이야기. 역시 냄새에 대한 이야기는 없음..
7. 시게마츠 기요시, 커피 한 잔 더
예전(20년전)에 사귀었던 여성이 만데린의 블랙을 좋아해서, 자신도 만데린을 마실 때면 그 시절을 돌이키게 된다.. 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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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면, 설탕이나 우유를 푼으로 휘저을 때의 시간이랄까, 틈새는, 꽤 소중해.”
“그래?”
“응…. 약간 고개를 숙이고, 스푼을 딸각딸각 울리고 있는 시간은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고백이나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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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카기 노부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등학생때 서로 냄새 맞추기를 하며 놀았던 친우 두 명이, 한동안 소원해졌다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는 이야기. 처음에 ‘눈 아래 묻힌 개구리나 시체의 냄새 -> 눈 냄새도 비릿한 냄새’ 라는 둥 시작했다가, 뒤로 가서 저변에 ‘너 내 남편이랑 바람폈지?’ 라든가 ‘나는 네 남편에서 나는 네 냄새를 맡았을 뿐’이라느니 ‘질투의 향기는 어떤 느낌?’ 이라느니 하는 내용이 오고가는.. 무섭다 이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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