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수정 : 살아있었습니다;)

6개월간 길냥이들 사료를 내주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요즘 사료 내주는 곳은 빌라 주민들이 밥그릇 치우는 일이 없어져서 한숨 놓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저 독일 다녀온 후에, 턱시도 냥이가 다른 길냥이들을 전부 쫓아버리는 게 남은 고민이었는데, 며칠 전 아침에 고등어 대장이랑 크게 한 판 하더니 둘 다 잘 안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주 주중엔 이로 기로 형제가 더 자주 나타났고, 어제 퇴근길에는 이로기로에, 고등어 대장의 애인 노랑이가 나타나서 사료를 부어주다 보니 오랜만에 턱시도가 나타났는데.. 싸운 후로 영역에 변화가 생겼는지 노랑이들 쫓아낼 생각은 안 하고 뚱하니 담장 위에 앉아있더라구요.

이 정도면 날씨 더 추워지기 전까지는 한시름 놓겠다, 했던 것이 어제 밤 9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늦잠을 자서, 7시 반에 헐레벌떡 출근을 하다 빌라 쓰레기장 옆을 지나는데, 구석에 왠 노랑 고양이가 쓰러져 있더라구요.
설마 싶어서 다가가니 이로였습니다. 이미 사후경직이 끝나서 딱딱해져 있더라구요.

마치 TNR한 것처럼 땅콩이 작다던가, 이로랑 다른 점을 어떻게든 찾아보려했지만.. 제가 아는 이 동네 노랑이 9마리 중에 흰 털 없는 전신 노랑이는 이로 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다른 캣맘/캣파더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언제 길냥이가 죽는 것을 보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하필 처음으로 이름 붙인 아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대학로를 떠나는 내년 2월 이후에 어떻게 되려나 걱정만 했지, 설마 이렇게 금방 가리라고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평소에 맛나는 거나 많이 먹여둘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이로는 한 번 캔 맛을 보면, 이후 하루 이틀은 사료를 안 먹으려하고 캔을 졸라대는지라 1주일에 한 번만 먹이고 빈도를 늘리지 않았거든요. 앞으로도 길에서 살아갈 텐데 캔만 먹는 버릇을 들이면 곤란하니까.


전날 저녁까지 잘 돌아다녔으니 질병 같지도 않고, 외상의 흔적도 없고, 남은 건 쥐약 밖에 없다, 싶긴 한데 딱히 입에 거품을 물거나 하지는 않아서. 쥐약이 아니라고 믿고 싶기도 하고요.
만약, 이로랑 같이 다니던 기로라든가 다른 아이들도 같이 먹었는데, 제일 가까이 저한테 접근했던 이로만 절 찾아오다가 그대로 숨이 멈추고, 제 집 근처에 쓰러져 있던 아이를 누가 쓰레기장에 버린 거라고 생각하면..

밤이 되면 다른 아이들 무사한가 돌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에 올렸던 이로 사진 몇 컷. 사진이 모여서 슬슬 다른 아이들이랑 정리해서 올리려던 것이 이런 소식으로 올리게 되어버렸네요.

퇴근길에 쫓아와서 밥달라고 우는 이로. 뒤에 기로도 보입니다.
중복(7.28)에 닭고기 육포 들고 동네 길냥이들에게 뿌리다가 마주친 이로.
독일 갔다가 귀국한지 1주일 지나도 안 나타나서, 다른 골목에 찾으러 나가서 만난 후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이로..
한 눈만 빛난다 싶어서 구도 이런 거 안 가리고 눌렀는데 놓쳐버린 샷./

9/23 수정 : 살아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랑 착각했다는; 땅콩이 없는 게 눈의 착각이 아니었어;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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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년 남짓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일하게 야옹거리는 아이였는데 많이 쓸쓸해질 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애들이 무사해야 할텐데 말이죠;

아…다행인데 다행이 아닌 소식이네요ㅜㅜ
부디, 삼끼님이 발견하신 그 아이가 좋은 곳에 가길…

그 고양이는 아니지만, 어느 이름 모를 고양이가 세상을 떠난 건 맞긴 한 거군요.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생명이 사라지는 걸 보는 건…

길에서 태어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면 더 안 되었지요. 생명은 전부 다 소중한 거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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