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세비야 -> 론다

다음날은 론다로 이동하는 날. 론다에서 볼 것은 누에보 다리랑 투우장 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론다에는 오후 늦게 떠나기로 했습니다.
방에서 뒹굴거리며 유유자적 굴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나왔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전날 깜박한 알카사르 궁전. 스페인 왕실의 여름용 별궁이라네요.

궁전 안은 대강 이런 느낌.
비행기 구름이 유난히 많이 보였던 날.
도도하신 공작님.

건물 안도 뭐 예쁘긴 했지만, 그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을 배회하며 놀았습니다.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 이 날 유난히 비행기 구름을 많이 본 거 같아요.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맡기고 버스 터미널로 출발. 론다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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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는 최근 떠오르는 관광지라는 듯. 마그리드나 세비야 같지 않고, 그냥 조용한 중소 도시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호텔이 있는 누에보 다리까지 찾아가는 길도(역시 터미널에서 걸어갔음), 번화가나 관광지는 아니었네요.
큰 길을 따라 두 번만 꺾으면 된다고 해서 그대로 갔습니다만, 그래도 자세한 지도도 없고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가 불안해서 지나가던 아주머니 붙들고 길을 물어봤습니다.
아주머니.. 우리가 알고 있는 길 말고 뭔가 지름길을 알려주려고 하는 거 같은데 영어는 안 되고, 막 뭐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막 길 건너 횡단보도에 있던 남자분이 이 쪽을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길을 건너와 아주머니에게 ‘한국인인 거 같으니 내가 설명하겠다’라는 듯이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이 길을 가면 되는 거라고 열심히 남자분에게도 설명을 시작..! 난감해하는 남자분과 함께 뭐 어찌어찌 말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친절하신 분.. ㅡ_ㅡ
현지 한국인이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길(그러니까 여행사에서 설명들은 대로) 알려주셔서 그대로 왔습니다. 한국어로 길 안내 받으니까 미묘한 기분. 여행하면서 한국인 여행객이 말 거는 건 싫은데 길 안내 받는 건 또 다른 미묘한 심리.

누에보 다리가 등장하니까 그 일대는 나름 식당이랑 호텔이 모여있는 번화가였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Don Miguel이라는, 누에보 다리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이었습니다. 일부 다리가 보이는 방도 있다고 미리 들은 바, 문의한 결과, 저는 다리 보이는 방 get!

내 방 창문에서, 가로로.
세로로. 창살 안 나오게 바닥까지 찍는 게 불가능했음.

음, 다리 보이는 방을 얻은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버스 터미널 나오기 전에 다음날 말라가 가는 표를 사두는 것을 깜박한 겁니다.. ㅡ_ㅡ;
시간은 이미 저녁 6시. 이 나라가 대체 몇시에 터미널을 닫을지 걱정이 되는지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터미널 다녀왔어요. 다녀오는 동안 딱 석양이 지고,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해가 지고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터미널 갔다가 오는 길에 지름길을 발견했는데도 말이죠.
그도 그럴게 이 도시, 산지라서… 안달루시아라고는 해도 세비야에 비해 꽤 쌀쌀했고요. 하여간 누에보 다리를 ‘석양이 질 때, 밑에서 올려다볼 것’이라는 충고는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다리.. 무진장 높은 데다가, 내려가는 길도 좁아서 위험해보이지, 친구가 다리 옆 암반에 균열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해서 ‘무서워서 못 내려가겠다. 관두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편으로 내일 아침 일찍 해 뜨면 내려가볼까? 라는 말도 나왔지만… 내려가서 보더라도 별로일거야! 라는 ‘여우와 신 포도’식 결론을 내렸다는.
(그리고 8시 가까이 되도록 어둡더라구요. 산지라서 해도 늦게 뜬;)

점심을 빵으로 허접하게 때운지라, 당장 저녁을 뭐 먹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근처에 맛나 보이는 식당도 별로 없고. 마침 여행사에서, 우리가 묵는 호텔 레스토랑이 괜찮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냥 결정. 다리 옆이라 전망도 좋을 거 같았구요. (결국은 춥다고 실외로 내보내주지 않았지만;)

시킨 것은 안달루시아의 전통 요리인 가스파쵸(차가운 토마토 수프), Monkfish(아귀), Swordfish(황새치).
가스파쵸는 제가 안달루시아에 왔으니까! 라고 주장해서 시킨 것. 맛은 있었는데 확실히 몸이 차가운데 찬 수프는 좀 그랬지만; 여름에 무진장 더울 거 같은 안달루시아다운 수프? 일행이 몇 숟갈 떠먹은 게 전부고 절반은 제가 혼자 먹었습니다. 다들 속이 차가워서 뜨거운 양파 수프를 추가로 시켰는데 이것도 맛났어요. 아귀도 맛났고.
황새치 구이는 별로.. 고기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올 것을 기대했는데 한 토막 올라와서 실망.
다음날 우리의 추천으로 이곳을 방문한 또다른 의국 동료는 사슴고기도 먹었는데 괜찮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배를 채운 다음, 시내 관광을 나갔습니다. 누에보 다리 옆에 공원이 있는데, 동네 청소년들이 모여서 노는 곳인 거 같더군요. 그리고 그 옆에 스페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투우장이 있었는데, 시즌이 아니라서 당연히 닫혀있고 겉에서 봤을 때 하나도 멋지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길가에서 발견한 왠 강아지.
끼잉...
나랑 놀아줄 거?(초점은 안드로메다로..)

아무래도 개 산책을 나온답시고 끌고나왔다가, 개는 가로수에 매어버리고 주인은 혼자 놀러가버린 거 같더군요. 끼잉끼잉 울어대는 것이 안 되었더군요. 에쿠니 카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이 떠올랐습니다.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이, 남편에게 개산책을 간다고 말하고 개를 데리고 나와서는, 친구인 꽃집 주인에게 개를 맡기고 자기는 내연남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앞에도 말했지만, 누에보 다리 아니면 나머지는 중소 도시 분위기라 다 문 닫은 분위기. 버스 터미널 찾아가다가 힐끔 봤던, 그나마 바 모여있는 거 같던 거리도 다 문을 닫았더군요.. ㅡ_ㅡ;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처음으로 대도시를 벗어나서 그런지, 하늘에 별도 많이 보였어요. 우리나라랑 위도도 비슷하니까. 뭐,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리온 자리 뿐입니다만…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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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볼수록 부러움이 ㅠㅠ 스페인 참 가보신 분들이 좋다고들 하더라구요~~ 별이 많이 보였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별본지 오래되었네요~ 작년 11월에 대마도 갔을때 보고 못봤어요 ㅠㅠ 흠.. 전 북두칠성밖에 모르겠더라구요~ 대체 북극성은 어딨는지 ㅋㅋㅋ

저는 북두칠성… 본 지 오래된 듯 하여서.. ㅠ_ㅠ
스페인, 따뜻하고 깨끗하고, 겨울에 유럽간다고 할 때 후보지로 좋은 듯 해요.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간 친구도 따뜻했다고 하더라구요. 지중해의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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