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저는 원래 연휴 내내 얌전히 국내에 있을 예정이었습니다만, 어느샌가 화, 목, 토요일에 운행하는 제주항공 히로시마 직항편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또 굥께서 너그러우시게도 2일을 임시 공휴일로 만드신다는 소식을 듣고(그래봤자 제 직장은 오전 근무지만, 반차 냄)
언젠가 한 번은 갈 히로시마, 이번에 다녀오는 게 연차를 최소로 쓰겠구나 하고 다녀왔습니다.
28일 목요일 출발하는 편은 이미 매진이었고 30일 토 ~ 2일 화요일로.
히로시마는 3박 4일이면 충분하지 않겠어..(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내 쇼핑할 시간을 못 냄. 히로시마 LOFT 이전 공사중 ㅠㅠ)
30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간 곳은 히로시마성 일대.
히로시마성/원폭돔/평화공원이 대충 한 자리에 모여 있어서 첫 날 이곳을 보고 다른 날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코스를 짰습니다.
그리고 보아하니 히로시마성 부지내에 히로시마 호국신사라는 신사가 있더군요.
이 호국신사라는 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어쩌다 구글맵을 들여다보면 지역마다 외곽에 있더라구요.
그 때는 나라를 지키는 신이 있는 신사인가 하고 더 깊게 생각 안 하고 넘어갔는데(실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한다)..
*히로시마성 부지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저녁 6시부터 觀月祭라는 것을 하고, 한정 고슈인(카키오키)를 준다고 입구? 도리이?에 써 있습니다.
아 뭔가 신사에서 행사를 한다.. 바쁘면 고슈인 직접 안 써줄지도.. 그럼 그냥 패스할까 신사 이름이 뭔가 딱딱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갔더니
일반 고슈인은 직접 써주길래 고슈인첩을 맡겼습니다.
(차라리 직접 써주지 않아서 그냥 나오는 게 나았을지도)여튼 고슈인첩을 맡기고 부적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문구:
야스쿠니靖國 캘린더의 판매 안내 어쩌구~
…에?
하고 일단 고슈인을 받고 알아보니,
호국신사라는 것은 원래 메이지 유신 이후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영웅(=전사자)을 위해 만들어진 초혼사招魂社가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중에는 국가를 위해 순직한 공무원(자위대/경찰/소방관)도 포함해서 모시는 신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각 지역마다 호국신사가 있어서 그 지역 출신의 인물을 맡는 거라고 하네요.
야스쿠니 신사는 호국신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와 호국신사 사이는 본사/말사 관계는 아니며..
호국신사중 오키나와 호국신사는 태평양 전쟁 때 희생당한 일반 국민(류큐인이겠지),
히로시마 호국신사는 원폭에 희생당한 노동학생과 여자정신대원도 포함해서 모신다고 합니다.
아아… 여기도 미리 알아볼걸..
아니, 그나마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 중엔 조선인도 있었을테니 그나마 낫긴 하지만, 뭔가 그레이존을 밟았구나 싶어지더라구요.
그리고 태평양 전쟁뿐만 아니라, 근대의 인물을 모신 신사(노기 신사라든가)는 조선 관련이 아니더라도 별로 가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나마 중세 이전의 인물이라면 크게 거부감이 없는데, 근대의 인물이 죽은 뒤 바로 신으로 모셔진다 라는 개념은 역시 잘 와 닿지 않아요. 악신이 되는 건 알겠지만.
여튼 여기서 가볍게 충격?을 받은 상태로 일단 히로시마성 천수각을 보러 갔습니다.예쁘죠. 예쁜데 저는 약간 쇼크를 받은 상태이기도 했고 저거 분명 원폭 맞은 후에 복원한 걸 거 아녀라는 생각이 들어서(겉이 지나치게 깨끗하다;) 올라갈 마음이 안 들더라구요.
이대로 호텔에 들어가자 하고 흐느적흐느적 나가다가 차길 나와서야 아 애초에 원폭돔이랑 평화공원 보러 온 거였지 하고 제정신 차리고 보러 갔습니다.평화공원 보고 나올 때 비도 오기 시작해서 무지 들러서 살 거 사고, 오코노미야키 먹고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시내 쇼핑을 할 시간은 없었다;;)
*
추가:
‘야스쿠니 신사’는 워낙 악명이 높아서 따로 알아볼 생각도 안 했는데, 이번에 문서를 읽다보니 야스쿠니 신사와 호국신사의 차이점으로 호국신사는 그 지역 출신자만 모시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모든 전사자-그러니까 조선인이나 대만인 전사자들도 같이 모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내 조상을 빼라는 항의(한국이겠죠?)도 받는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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