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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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世) 21년. 탐정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 성립되어, 탐정 사냥이 행해지는 현대. 소녀 소라시즈 준은 이전 명탐정으로 이름을 알렸던 부모 손에 자랐지만, 엄마는 어떤 사건을 뒤쫓는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엄마의 고향인 오쿠타키노에 아빠와 함께 이사와서 엄마의 귀환을 기다리지만, 그곳에 발견된 행방불명의 타살사체가 부녀의 일상을 파괴한다! 존재의의를 부정당한 탐정에게 수수께끼가 이빨을 드러낼 때 새로운 이야기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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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世라고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배경이 가상의 현대 일본입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배경지식이 없는 채로 북오프에 ‘아직 안 읽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이 있길래 집어왔습니다만,
프롤로그에 난데없이 세계 2차 대전 중의 핵폭탄 실험이 나와서 뭐지 하고 읽던 차에… 뭔가 실제하고 다르다? .. 8월이 지나가고… 교토에 세번째 원폭이 떨어지고…하여간 실제와는 다른 일본이 무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러시아에 의해 홋카이도와 홋카이도가 아닌 지역으로 분단된 가상 일본.
징병제도 있어서,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 친구(여고생)가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군대 안 가도 되어서..’라는 부분까지 읽고는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몸을 배배 꼬았네요 ^^;;

하여간, 그런 홋카이도(정식 명칭 히노모토 공화국)와 소규모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서로 스파이를 보내면서, 국민의 관심을 북으로 돌리게 하고 한편으로는 독재에 가까운 정치를 펼치고 있는 정부.
그 정부가 ‘의뢰인의 비밀을 빌미로 공갈협박이나 하는 탐정은 사회악이다’라고 하며-실제로는 탐정들이 정부 비판적인 세력과 관련이 깊기에- 사립탐정행위 금지, 사립탐정의 검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명탐정으로 이름이 높았던 부모를 가진 주인공이지만, 어느날 엄마가 행방불명이 되고-행방불명이 되기 전 남긴 메세지에 친정에서 대기해달라는 내용이 있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할 겸 아빠와 엄마의 고향인 오쿠타키노라는 시골에 이사와서 조용히 지냅니다. 오쿠타키노가 어디인지는 읽다보면 대충 도후쿠구나 눈치채게 되는데, 작가 후기에 의하면 후쿠시마가 모델이라네요.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 전에 발표된 것)

탐정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려는 부녀였지만,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연속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준이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인데, 트릭은 이 작가가 쓴 것 치고는 너무 도구에 의존해서 치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쥬브나일 대상으로 쓰인 거라 그 쪽은 힘을 뺀 거겠지만요.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스토리 진행은 괜찮아서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기의 설정만 잘 버티면 말이죠. 게다가 이게 이후 출판사를 바꿔서 시리즈화 되어서, 현재 3권까지 나왔다는데 으음.. 엄마와 재회하는 내용이면 몰라도 굳이 사다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한국인으로서는 이런 국가 설정이 훨씬 신경쓰이는 부분이라; 경직화/우익화/중앙정부로의 권력 집중을 비판하고 있긴 합니다만(현재의 일본도 충분히 문제지..)
북의 적국을 이용한 프로파간다, 권력자 자녀의 징병 면제 문제, 심지어 땅굴 등.. 뭐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지 쉽게 짐작가는 바,
그럼 이 책에서 한국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분단되는 일 없이 대한공화국(조선이 들어가야하지 않나)이라는 이름으로 전후는 UN의 신탁통치를 받고 지금은 영세중립국이 되었지만 열강에 둘러싸여 전전긍긍하며 군비를 올리고 징병제를 도입했다.. 라고만 슬쩍 언급했습니다.

맨 처음 읽었을 때의 ‘설마 피해자 코스프레냐..’했던 것과는 좀 달라서 다행입니다만, 역시 일본인이 이 시기의 이야기를 뚜렷한 반성의 기미 없이 쓰면 기분이 나쁘죠.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잊을 만하면 뒤통수를 때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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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이 요즘 일본 책이든 애니든 미디어를 접할 때 잘 보다가 마지막에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잊어야지’ 하는 소리만 나오면 짜게 식는다더라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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