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북스피어에서 S.S. 밴 다인의 전집을 내놓기 시작했군요. 처음 나온 작품은 스카라베(딱정벌레) 살인사건과, 한국에는 첫 소개되는 겨울 살인사건입니다.
스카라베 살인사건은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밴 다인의 작품입니다. 금☆ 출판사에서 내놨던 추리소설 전집에 ‘이집트 왕의 복수’인가 하는 이름으로 올라와있었죠. 같은 전집에 앨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도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은 왠지 세트로 제 뇌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스토리상의 공통점은 전혀 없지만)
그리고 함께 읽었던 것이 케닐 살인사건. 이 쪽은 그리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스카라베 다음에 발표되었던 장편이라고 하네요.
이후 처녀작인 ‘벤슨 살인사건’을 해문판으로 읽었지만, 어린이 용으로 현학적인 냄새는 약간 제거되었던 금성판과는 달리, 해문판에는 밴스가 나열하는 온갖 미술 관련 용어들이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무진장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범인은 기억나니까 나름 인상에는 남았던 모양이지만.. 이후 해문과 동서 문화사에서 나온 카지노, 비숍, 카나리아 그린 등등은 읽었기는 했지만 영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북스피어에서 내놓을 다음 권들도 사게 될지는 솔직히 미지수. 장정도 좋고, 학생때와 달리 나름 경제력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의 장정은 확실히 지금까지 나온 밴 다인 작품 중 가장 호화롭습니다(그만큼 가격도 세지만). 표지 디자인도, 밴 다인의 자화상은 여러번 봤지만, 실제 얼굴 보는 건 이게 처음인 듯. 게다가 안쪽을 보면 결혼 전에 찍었다는 사진이 있는데 이게 또 미청년! 확실히 귀족적인 생김새가 저도 모르게 끄덕여지네요.
하여간, 스카라베 살인사건은 아실 분들은 아실테니 넘어가고(참고로 전 이 작품에서 밴스와 하니 사이에 벌어지는 만담(?)이 제일 좋습니다),
겨울 살인사건은 작가가 영화화를 위해 집필했다가 퇴고 중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길이도 짧고, 특유의 현학적인 냄새도 거의 빠져서 쉽게 쉽게 읽혔네요. 추리 역시 기발한 트릭이나 논리적 구성은 그리 없는 편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편집부의 글이라든가 이런저런 읽을 것들이 있는 것도 좋았네요. 밴 다인이 탄생하게 된 경위야 너무나 유명하니까 둘째 치더라도,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20가지 규칙’의 내용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네요. 약간 적어봅니다.
그러고보니 다른 누군가가 세운 규칙중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당시 중국인들은 모두 기공=초자연적인 힘을 쓴다는 인식이 있었으므로)’라는 내용이 있었지요.
10. 범인으로 판명된 인물은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어야 한다.
: 범인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마인’을 떠오르게 하는 지문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F가 된다 에서는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죠. 재미도 없는 거 읽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트릭을!! 이후 모리 히로시는 쳐다도 안 본다는…
13. 비밀 결사, 카모라당, 마피아 따위를 탐정 소설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
: 하드보일드 작가가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했으려나.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요, 하드보일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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