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사체 음란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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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여자가 양과자점을 방문해,
가방 직인은 심장의 치수를 잰다.
내과 의사의 백의에서 비밀이 글러떨어져,
고문 박물관에서 벵갈 호랑이가 숨을 거둔다―
시계탑이 있는 마을에 아로새겨진,
비밀스럽고 잔혹한 애도의 의식.
청렬한 미궁을 자아낸, 11개의 연작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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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이 블로그에서 오가와 요코 작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네요.
하기사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카와카미 히로미 작품도 거의 말 안 하니 ㅡ_ㅡ;;

오가와 요코의 단편집입니다. 시계탑이 있는 한 마을에서의, 11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구성으로 보면 카와카미 히로미의 어디에서도 먼 마을하고 비슷하네요.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는, 보통 다들 그렇듯 저도 2004년 서점대상 대상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국내 번역판으로. 당시 소설을 소개해주신 모님께서 ‘임신 캘린더’ 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당시 이 두 권만 들어와있었음) 읽었는데, 농약이 잔뜩 묻은 과일이 상징하는, 임신한 언니를 향한 감정이 인상적이었지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단순한 치유계 소설로만 봤는데 둘이 분위기가 너무 달랐거든요.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발표된 작품군을 보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미나의 행진 등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작품은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데 비해, 박사가~ 보다 이전에 발표된 작품은 다들 어딘가 뒤들렸달까, 그로테스크하달까, 그러면서도 관능적인 시각의 작품이 많지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호텔 아이리스’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좋아하시는 분들은 마음에 드실 듯?

요 ‘과묵한 사체 음란한 애도’도, 1998년 발표작이니만큼 어딘가 뒤틀려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내용은

1. 양과자점의 오후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이후 매년 아들의 생일 때마다 딸기 쇼트 케익을 삽니다. 그러고는 케익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바라보지요. 케익이 썩어가는 모습과, 버려진 냉장고에서 질식사한 아들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냉장고 안의 음식을 전부 꺼낸 후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네요.

2. 과일즙

3. 노파 J
화자의 집주인이 기르는 당근밭에, 어느 날부터 사람 손모양으로 생긴 당근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밭에서 발견된, 손목이 없는 사체.

4. 잠의 요정

5. 백의
병원에서 비서(?)로 일하는 화자. 업무 중에 환자와 의사들이 세탁을 맡긴 가운을 정리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운 주머니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물건들. 속눈썹, 복수나 타액의 얼룩, 거짓말을 하는 혀, 입술, 성대.

6. 심장의 가봉
가방 직인인 화자. 어느 날 화자에게, 심장을 넣을 가방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옵니다. 의뢰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몸 밖에 있는 여인. 화자는 가방을 만들면서 여인의 심장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 단편에서 바다표범의 가죽으로 가방을 만든다고 나오던데, 그거 궁금하더라는… 물에 씻어도 되는 가죽이라는 게 더더욱(어이). 가방에 물얼룩지면 피눈물이 ㅠ_ㅠ
 
7. 고문 박물관에 어서오세요
우연히 고문 박물관에 들어간 화자. 전시되어 있는 여러가지 고문기구를 보면서, 그것으로 애인을 고문하는 상상에 빠집니다.

8. 기브스를 파는 사람

9. 벵갈 호랑이의 임종

10. 토마토와 만월

11. 독초


……..페티시즘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가의 작품 중에 유난히 인체의 일부에 집착하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약지라든가, 난소 기형종이라든가. 아니면 굳이 소유하지 않더라도, 인체를 소재로 삼는다던가(우연한 축복).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체의 일부라든가, 체액이라든가의 묘사가 나오는데 음… 인상 깊기는 한데 별로 공감은 못 하겠어요. 아니 굳이 공감할 필요는 없지만.

제 안에서의 오가와 요코는, 에쿠니 카오리보다는 좋아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 보다는 별로인 정도라, 앞으로도 그냥 제목 보고 끌리면 사다 읽는 정도일 듯. 그래도 한국에서 그럭저럭 팔리는지 가끔 들어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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