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카미 히로미 – 어디에서 가도 먼 마을

User image

제법 쓸 만했었습니다, 제 인생은―. 남자 두 명이 기묘하게 사이 좋게 동거하는 생선가게의 이야기, 한밤중에 마주 앉아 홍차를 마시는 주부와 시어머니, 부모의 불화를 바라보는 소학생, 그리고 맨발로 남자를 향해 달려간 여자…. 각자의 인생은 느슨히 이어져, 약간 모습을 바꿔가면서, 다시 이어져간다. 도쿄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평범한 날들의 풍족함과 아슬아슬함을 비춰낸 연작단편소설.

현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포스팅이 안 되는, 카와카미 히로미입니다. 문고본으로 나오는 족족 챙겨읽고 있어요.
도심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한 마을. 그곳을 배경으로 각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단편인 ‘작은 방이 있는 옥상’은, 생선 가게 주인 헤이조 씨와, 생선 가게가 있는 건물의 옥상의 작은 방(다락방?)에 살고 있는 하라 씨의 관계에 대해 그린 이야기.
화자는 생선 가게 단골 손님인 학원 강사입니다. 물론 강사 자신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주로 헤이조 씨와, 헤이조 씨의 죽은 부인의 불륜 상대였던 하라 씨에 대해 ‘어째서 둘이 함께 살고 있는 거지?’ 라고 살짝- 어디까지나 아주 약간- 궁금해한다는 이야기네요.

그리고 다음 단편에서, 앞 단편에서 잠깐 나왔던 등장인물이 다시 잠깐 나온다는 식으로-뭐니뭐니 해도 작은 동네니까- 9개의 단편이 이어져 가다가, 마지막 단편은 그 죽은 헤이조 부인의 시점에서 서술됩니다.
결혼 후 주변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남편과 자신도, 서로를 안아서는 주위 사람들의 죽음 밖에 느낄 수 없었으니까- 각자 다른 상대를 찾아야 했다, 라는 이야기를, 딱히 죄책감이나 의문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네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어지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다’ 라는 생각은,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카와카미 작품에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약간 놀랐습니다 ^^;


사실 카와카미 히로미를 좋아하는 건, 물론 ‘선생님의 가방’ 같은 담담한 일상과 사랑 이야기도 괜찮았기 때문이지만.. ‘카미사마(어느 멋진 하루)’, ‘뱀을 밟다’ 같은, 일상에 무리 없이 섞여든 판타지라든가, 또는 먹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에세이 등이 좋아서였는데- 최근 경향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하지만 카와카미 히로미니까, 딱히 정열이나 긴장, 갈등이 보이지 않는 덤덤한 사랑 내지는 불륜의 이야기)여서 사실 약간 아쉽습니다.


P.S: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Comments

Add Yours →

이야, 새해 첫 날부터 열심히 책을 읽으셨다니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끝에 덧붙이신 작품들은 정발도 되있네요. 음.. 한 번 읽어보고 싶긴 한데.. 아니 근데 먹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에세이라닠ㅋㅋㅋ

아뇨, 저건 작년에 읽은 것을 1월 1일에 썼을 뿐입니다 ^^;
어느 멋진 하루, 뱀을 밟다, 선생님의 가방 전부 들어온 작품이에요. 들어온 작품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입니다만.. 아쉽게도 에세이는 아니에요. 일본 작가중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 아니면 에세이는 안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
먹는 이야기에는 국적이 관계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의 가방’에서는 먹는 이야기 좀 나오지만요. 주로 안주로.

가와카미 히로미를 좋아하시는군요 +_+
저도 ‘뱀을 밟다’와 ‘선생님의 가방’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읽은 지 오래되어서 챙겨봐야겠습니다. 이런 잔잔하면서도 몽환적인 이야기 좋아요~

저도 몽환적인 이야기가 좋았는데 최근 작품에는 안 나와서 슬퍼요… ㅠ_ㅠ
몽환적인 이야기라면, ‘어느 멋진 하루(카미사마)’랑 ‘용궁’을 추천합니다~ ^^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