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미국. CIA 요원 길라드는 달로부터 극비 문서를 가지고 본부로 귀환하던 도중 정체불명의 세력으로부터 기습을 받고 감금을 당합니다.
감금당한 방에는 볼드윈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있어 그의 도움으로 탈출에는 성공하지만, 길라드가 갖고 있던 극비 문서-실은 지구를 신성(nova) 상태로 만드는 장치의 설계도-는 사라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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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전집 구입은 주로 금성 출판사의 가정 방문 판매로 이루어졌습니다.
90년대 추리소설붐이 들면서(애거서 크리스티의 빨간 전집이라든가) 금성에서도 추리 전집을 만들었는데 간간히 SF가 끼어 있었어요.
거기 실려있는 것 중, 유일하게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노바 폭발의 공포’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최초로 읽은 스페이스 오페라(그런데 실은 거의 지구에서만 활동하니까 그냥 첩보물). 코넬 울리치 포함해서 그 시절에 읽었던 것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서 도서 정보를 찾았더니 뜻밖에 작가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이더라군요.
보아하니 하인라인의 대부분의 중단편을 아작에서 낸 거 같고, 근데 이 중 뭐가 제가 찾는 단편인지 검색으로 알아보려니 찾기 힘들어서(트위터 탐라에도 외쳐봄) 처음엔 버벅대다가, 시기를 생각했을 때 당연히 일본어 중역이려니 하고 야후 재팬가서 검색했더니 나왔습니다(그리고 몇 초 후 트친도 찾아주심).
원제는 심연gulf 라고 하고, ‘노바폭발의 공포’는 일본에서 내놓은 제목이고, 보니까 우리나라에 그 전에도 두 번 발췌역이 나왔었다고 하네요. (초능력 부대와 초인부대라는 이름으로)
여튼 반가운 마음으로 빌렸습니다. 빌려본 후 살 만하면 사야지하고.. 그런데 안 팔렸는지 놀랄 정도로 서점 리뷰가 없더군요 ㅠ
일단 이 책은 심연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단편 다섯 편 중편 한 편이 같이 실려있고요. 이 쪽은 딱히 별 인상에 안 남았습니다.
하기사 하인라인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랑 여름으로 가는 문(키잡물) 정도만 기억에 남아서.
내용 자체는 간단합니다. 요원인 주인공이 있고, 지구를 멸망시키는 장치를 이용하여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이 있고(테넷?),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현자가 구합니다(매트릭스?). 이게 초반부 내용이구요.
그런데 이 현자가 사실 그냥 현자가 아니라 두뇌 활동이 인간에서 더 진화된 신인류 집단의 수장? 이라, 주인공을 자신들의 집단에 끌어들이려 설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이 어릴 때 읽은 발췌역에서는 신인류이기는 하지만 두뇌 활동이 더 빠르고 개인의 차는 있지만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도 쓸 수 있어서 그림자에서 사회를 지키는 집단이라는 식으로만 말하고 넘어가는데, 이번의 아작판으로 읽으니 이 작가에 대해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인류 사회는 권력을 잡은 몇몇 집단이 뭉쳐서 굴러가고 있으니 집단의 머리를 쳐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한다는 것까진 알겠는데,
민주주의는 지난 150년 동안 기능을 잘 발휘했지만 이제 현인류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고, 신인류가 기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싶어도 현인류는 그 정도의 지능을 갖는 것도 무리니 신인류가 지배를 해야한다.
하지만 지금은 신인류가 소수파라 숨어살고 있고, 신인류의 DNA를 지켜야 하고,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면 신인류가 현인류를 이끄는-지배하게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약간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현인류의 어리석음?의 예로 KKK단이 나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고, 공산주의도 같은 취급을 했을 땐 뭐.. 냉전 시대니까 어쩔 수 없나? 했지만
이렇게 소수(악)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는 나쁘단 말을 해놓고 이어서 일반 민중은 어리석으니 우리 엘리트가 민중을 지배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잠깐도 아니고 꽤나 절절히 하기 때문에(왜냐면 자신은 현인류라고 생각하고 반발하는 주인공을 설득해야 하니까) 흐름도 끊기고 이 작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싶어지기도 하더군요.
작가의 필력은 대단해서, 초반까지는 빤한 플롯이어도 재미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어릴 적의 추억보정을 해도 이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대출만 해야지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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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 결국 우생학 이야기인데? 하고 출판된 년도를 찾아보니 1949년.. 아직 우생학이 주류였던 시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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