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짜증나던 당직날의 하루.

포스팅이 너무 없어서 올립니다.

처음엔 지인들에게 근황 보고하는 목적으로 쓴 것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혼잣말에 가까워져서 의학 용어가 섞여 나오니 그러려니 해주세요.

그나저나 병원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의사가 하는 말이라곤 환자 이야기뿐이라더니 사실인 듯.
요즘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포스팅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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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일이 당직인지라 9일은 분만장에서 맞았다.
물론 명절이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선거일이겠다, 왠지 벚꽃도 핀 거 같고, 당직 끝나고 퇴근하면 뭐 할까 생각하고 있자니 옆에서 간호사들이 오후에 비 와서 꽃 다 떨어질 거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음, 어쨌건 밤 동안 절박 유산 1명과 완전 유산 1명이 찾아왔는데, 둘 다 생신-그 동안 산전 진찰을 우리 병원에서 받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분만장에 찾아오는 환자를 말한다-이었다.
그나마 완전 유산 쪽은 제대로 응급실로 환자 등록해서 올라왔는데, 절박 쪽은 뭔가 아는 게 있는지 분만장으로 바로 찾아왔음. 어차피 환자 등록번호도 없으니 남편을 응급실 보내서 등록시켰지만- ‘여기로 바로 오다니 잘 아시네요?’ 하니 ‘남편이 여기에 아는 의사가 있대요’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순간 VIP 아닌가 하고 비상 발동.
나중에 등록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예전 분만장에서 일했던 간호사랑 아는 사이라고 대답해서 모두 ‘뭐야~~~!’라는 반응이 돌아옴. 지금 간호사들도 모르는 사람인지 함께 짜증.
하여간 local은 밤에 안 열고, 걱정은 되고 큰 병원 찾아오는 심리는 이해하겠는데 이런 식으로 ‘나 VIP에요’라는 태도로 나온다든가 이미 그 쪽에서 괜찮다는 말 들었는데 여기 찾아온 것이라든가 결국 나는 또 못 자게 되버리든가 하면 솔직히 짜증난다. ㅡ_ㅡ;

어쨌든 절박 쪽은 ‘지금은 아이 괜찮아요’라고 잘 말해서 돌려보낸 것이 새벽 3시.
이제 좀 자볼까나 하던 참에 다시 오는 응급실 호출.. 그것도 처음은 나한테 온 게 아니라 ER 간호사가 분만장 간호사측에 전원 온다고 연락 받은 거 있냐고 물은 모양인데 간호사들도 짜증났는지 말없이 바로 나한테 수화기를 넘겨줘서, 사정 잘 모르는 채로 전화기를 받으니 간호사가 “XX대에서 NICU 없다고 전원 온 환잔데요, 3X살이고 임신 2X주고 ~~~로 왔대요.” 라고 하더라.
솔직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난 남한테 그다지 짜증내는 성격은 아닌데 그 때는 정말 목소리가 가라앉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기는 간호사가 Noti해요?”

순간 간호사가 당황해서 ‘아뇨아뇨~ 혹시나 transfer 문의온 거 아닌가하고 여쭤본 거구요, 이따가 저희 선생님이 다시 Noti 하실 거에요’ 라고…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군.
(나중에 이 말을 들은 친구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지 1분 정도 지나서 EM 4년차(…)한테서 Noti가 오길래 긴 말 안 하고 그냥 분만장으로 보내라고 하고 끊었음.

(그러고보니 전에 남편이 ER 인턴 안 갈구냐고 물었는데… 우리 과만 그러는지 여기 병원 자체가 그러는지 인턴이나 EM 1년차 Noti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부인과 환자 하나는 EM 교수가 Noti해서 동기가 무척 부담스러워 한 적이 있음.
부인과는 몰라도 산과는 바로 분만장으로 올리니까 그 쪽도 껌환자라고 생각하는 거 같고.. 하여간 그렇삼.)

결론부터 말하면,

남쪽지역에 존재하는 모 대학병원에, 심하게 울고 난 뒤에 조산이 시작&양막이 자궁 경부 밖으로 튀어나온 거 같다고 local에서 transfer 된 환자를,
내진 안 하고 초음파 안 보고 Lab 안 하고 항생제도 안 쓰고 Tocolytics 달고, Tocolytics 달아도 조절 안 되어서
대전/경남 지역 대학 병원 NICU 자리 알아보고 없다고 해서, 환자에게 ‘그럼 서울에는 NICU 있는 병원이 있을테니 알아서 가실래요’라고 했더니 환자가 받아들여서,
따로 전원서도 안 써주고 local에서 받아온 전원서만 들려서 서울로 쏘았고, 우리 병원으로 찾아온 것은 그저 환자의 의지일 뿐.

…………..이라는 것을 내가 그 병원 분만장에 전화걸어서 알아냄. 그 쪽은 ‘왜 나 자는 거 깨우는 건데’하면서 도리어 성내더군.
하여간 우리쪽도 NICU 자리 없어서 A병원이나 S병원 문의했지만 다들 없대고,
그래도 어떻게 한 대학 병원에 알아내고서, 환자 보내게 되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 환자 진찰을 해보니… 멀쩡한 거였음. ㅡ_ㅡ;
자궁 경부 밖으로 나온 건 아무래도 polyp 같고, PPROM 아니고, tocolytics가 듣는 건지 처음부터 수축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하여간 tocolytics 끊고 4시간 지나도 수축 한 번 없길래…
전원 보내기로 한 대학 병원에 미안하다고 전화한 다음 환자는 대구로 돌려보냈다 ㅡ_ㅡ;

뭐, 환자 4시간 모니터하는 동안 1~2시간 잠은 잤지만… 오전 10시에 인수인계 끝내고, 당직 일지 쓰고 12시에 슬슬 퇴근하려는데 2년차 한 명이 fellow가 밥 산다는 데 너도 같이 가자고 하는 바람에 붙들려서 함께 백숙 먹음. (백숙 말고 다른 걸 먹고 싶었지만 뭐…)

그리고 4시경, 비가 슬슬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 귀가해서, 뭐할까 하고 멍~하니 있다가 깜박 잠이 들어서 저녁 7시에 일어나서, 비척비척 북오프에 산책 나감.

비와서 그런지 북오프, 사람 없었고… 인덱스 6~7권, 밤은 짧으니 걸어라 소녀여, 달의 뒷면을 사고서 광화 교보로.
교보도 사람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정말 심하게 없는 것이.. 평일 오전 수준이었음.
오늘은 다들 꽃놀이 계획하고 그런 거 같았는데 비와서 안 되었군 생각하면서 사도 6, 하가렌 19, 츠바사 23권을 삼.
사도는 코믹스 완결, 츠바사는 이미 본 내용이고, 하가렌은… 로엔하임 어릴 적 모습에 모에.

하지만 역시, 안 그래도 피곤한데 비오는 길을 쏘다니니..
고시원 도착할 때는 괜히 나갔다고 후회하고 있었음. 그리고 12시에 취침.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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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쪽이신가 보네요….? 모르는 단어들이 잔뜩; 하지만 그래도 제가 겪을 수 없는 다른 사람의 경험담은 재밌어서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

저는 4월9일 선거일에 투표는 안하고,,,, 투표장에서 투표알바를 ㄱ-;
부재자투표 했어야 했는데,,,,,ㄱ-;

역시 의학용어는 모르는 사람은 덜덜하는군요;
법은 대충 한자니까 때려잡으면 되는데 말이죠=ㅁ=
얼마전에 신경과? 에서 뼛가루 튀는 일을 하신 거 같았는데 지금은 산부인과이신가봐요
그거참-_- 애 낳으려면 몇시간 걸리는데…..힘내세요!

어……..사도면 오키마미야 사도인가요?
완결이라니……소설이 원작이니까 좀 더 오래갈줄 알았는데 의외에요

네, 오키 마미야 사도입니다.
그러고보니 읽다가 말았는데(어서 자야겠다 싶어서;)
소설은 뭐.. 읽을 생각은 없지만 교보에 늘 꽃혀 있더군요.

전화로 들은 얘기를 글로 읽으니 수업듣고 책읽는 기분?
왠지 써머리해서 외워야 하나? 네가 해석해서 얘기해준 용어들 찾아봐야 하나?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음..ㅋㅋ
근데 나만 이상하게 보이나? 남편이라는 단어가 밑줄그어져서 다른색으로 보임?

핫핫 자기전에 네 홈피가 생각나서 한번 들렸다…가…아직껏 둘러보는중?ㅋㅋ
내일이 두렵다…
남편이 왜그런지 알았음… 키워드 이거 재밌네?ㅋㅋ

어제 윤정한테서 연락이 와서 순간 윤정인가 했다.
(내가 받을 수 없는 시간에 전화를 해서, 내가 다시 전화하니 안 받더군…)
응, 유익한 기능이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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