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일본인과의 대화

크로이츠님의 홈에서 트랙백 합니다.

삼끼의 실가는 인천(지금은 부천)입니다만, 학교가 춘천에 있는 관계로 1년의 2/3은 춘천에서 삽니다.
그리고 춘천은 아시다시피, 겨울연가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오는 도시.
청량리로 떠나는 기차를 타고 있으면 가끔 일본어가 들려오고는 하죠.

..하지만, 겨울 연가가 뜨기 시작해서 일본인이 몰려올 적에는 저는 이미 본과였으므로, 집에 갈 때는 금요일 저녁 7시 기차를 타기에 사실 제 자신은 일본인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긴, 젊은 남자면 몰라도 아줌마만 오는데 별로 만나봤자 좋을 것도 없고 흥미도 없었죠.
..따지자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남이섬은 춘천에 포함…은 되어 있달까 춘천과 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해있지만, 춘천시가지와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가평역이고요. (강촌도 일단은 춘천에 포함되어.. 있죠, 아마.)
그래서 춘천시가지까지 들어오는 일본인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고 행동구역도 다르니 만날 일은 없었고요.

그리고 이제는 드라마 끝난지도 오래니까 좀 안 오지 않을까요.
..라고 생각했으나 이번 학기만 해도(저 개강한지 10주 되어 갑니다 =0=) 우리 병원에 응급으로 들어온 일본인 관광객만 제가 아는 한 두 명.
한 명은 남이섬에서 넘어져서 가볍게 발을 삔 줄 알았던 환자. 가이드와 딸을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뼈가 드러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정맥이 찢어져서 피 나고.
마침 제가 응급의학과 돌던 주였는데, 하필 제가 없을 때 와서.. 실제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임신 9개월에 관광왔다가 산통이 와서 제왕절개 수술하신 환자.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온 거라(임신 9개월이 보호자도 없이 해외여행하지 마;;;), 가이드는 있었지만 마땅한 보호자가 없어서 난리였다고 하더군요.
척추마취를 해서 환자의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마취과를 돌고 있던 (에린에서의)남편군이 통역을 맡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다른 과를 돌고 있었기 때문에 못 봤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하여간 저는 이런 이유들로 춘천에 있으면서도 일본인과 대화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1학기의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금요일 오후 수업이 휴강이었던지라, 한낮에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경춘선은 평소에는 MT 무리로 시작하는 관광객, 아침과 밤은 출퇴근하는 사람과 강원대/한림대생이 주류인지라, 춘천역에서 출발할 때는 사람이 없다가 강촌을 지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많아진다는 구조입니다. 그 때도 역시 춘천역에 있었던 것은 모녀로 보이는 일본인 관광객 두 명 뿐. 20대 후반 내지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과 그 어머니였습니다.

‘사람 없네..’ 하면서 재빨리 표를 끊고 기차에 탑승하고 있자니 그 모녀도 (물론) 일본어로 뭔가 수다를 떨면서 제 뒤를 따라오더군요.
그리고 자리를 찾아서, 가방을 정리하고 앉고 있자니-그 칸엔 저 혼자였습니다- 잠시 뒤에 그 모녀가 제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 약간 당황하는 제게 딸이 기차표를 내밀며 “Excuse me, ~~~~(이하 못 알아들음;)” 이라고 하더군요.
더욱이 당황하며 기차표를 바라보니 손가락으로 ‘입석’자를 가리키며 영어(로 짐작되는 언어)로 뭐라뭐라.
아하, 입석이 맞냐고 묻는 건가보다. 이렇게 자리가 비어있으니… 라고 지레짐작하고 뭔가 대답을 해줘야 겠다고 생각.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간의 영어가 통하지 않을 것은 눈에 훤하고.

자아, 어떻게 할 거냐, 김선영.

삼끼: (3~4초의 침묵 뒤) 立てるたけ….

그리고는 아 立つたけ라고 했어야 했나 랄까 저렇게밖에 말 못하나 나는 하면서 갈등하기 시작한 저를 앞에 두고, 모녀는 잠시 시선을 교환하더군요.

딸: (약 5초의 침묵 뒤) 空いてる席座ってもいいの?
삼끼: ………はい.

그러자 모녀는 아무 말 없이 다른 칸으로 가 버리더군요. 인사도 없기냐?
저도 “40分くらいなら空いてる席残ってるはずだから座ってもいいんですよ” 같은 친절한 설명을 해줄 마음 같은 것은 날아가버렸으니 잠자코 있었습니다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이 제 생애의 첫 일본인과의 대화. …쇼크로 몇몇 친구들 붙들고 한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 역시 일본인과 대화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관광을 간 것도 아니라.. 에고;

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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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들이 입에달고사는 아리가토 한마디도 없이 가버렸다니-ㅁ-;; 집이 춘천이였구나~ 강원도하면 왠지 멋진곳들만 가득한 느낌^^ 실제로 수학여행때 가본 강원도는 굉장히 멋졌었어’ㅁ’!! 음음 다시 좋은대화를 나눌수있는 기회가 꼭 올꺼라고 생각해~

춘천에서 사는 게 5년이 넘어가는데 이제껏 소양댐 한 번 간 적 없는 무미건조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강촌은 몇 번 갔지만.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놀러나 봐야할텐데.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고.
정말이지 이 이후에 일본인을 만나서 이야기 할 기회가 없어서… 굳이 따지자면 대화, 까진 아니었지만 박로미상 기자간담회 때 한 마디 건넨 게 전부려나…;

넵, 그런 시츄에이션이었습니다. 상황설명이 부족했다 싶어서요,
이 일 당시에 포스팅 하려다가 그만 뒀었는데, 마침 요즘 포스팅 거리도 없고 해서 그만v

/토닥토닥 /위로
그나저나 왜 인사도 안하구 가냐…..모처럼 일본말로 짧지만 말해준게 어딘데!!!…………삼끼양 오랜만^^ 잘 지내죠?
금냥의 그 소설이 실린책은 기회가 되면 언제나 오키♡
그나저나…..요즘 내가 한창 모에중인 데스노트 이야기는 왜 없니….ㅠ-ㅠ 읽거랏,삼끼!!!^^

데스 노트는 95화까지만 보고.. 요즘은 잡지 연재분을 찾는 일이 없어서요;
단행본이야 꼬박꼬박 사고 있지만 정말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테츠군도 궁금하고..
그보다 곧(?) 발매될 화보집에 더 관심이 가요. 과연 한정판은 비싸서 못 건드리겠지만 일반판은 사야죠v
그리고 금냥의 소설책(..)은 부디 언제라도!
이번엔 3월 31일에 집에 갈 예정이니까.. 그 때가 아니라도, 이번 학기는 학교 다닐 때랑 달라서 시험 자주 안 보니까, 주말에 서울 다녀올 수 있어요. 토요일 저녁이라면 아무 때라도vv

일본 사람들이 입에 붙이고 사는 아리가토 없이 그냥 휙 가버렸다니 왠지 매너가 꽝인 사람들 같네요. -_- 제 일본인 조카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3박 4일을 감동하던데…-_-;

저는 여기서 일본어를 쓴 날은 그 뒤로 3박 4일 동안 속으로 자아 비판을 하는 패턴의 반복입니다. -.ㅜ

그러게 말에요. 심지어는 고개 한 번 끄덕이지도 않고!
덕분에 “인사성 밝은 일본인”이라는 이미지에 엄청난 불신감을 안고 말았습니다..;

매우 오랜만에 글 남기고 가는 사람입니다;
으악; 게스트북이 안써져요ㅠㅠ;
어쩌면.. 삼끼님이 다니는 대학과 학과를 지망하게 될지도 몰라요,ㅇㅁㅇ
제가 이과 고3이거든요,,
그냥, 알려드리고 싶어서..;ㅇㅁㅇ

오래만에 뵙습니다. ^^
드디어 고 3이 되셨군요… 아쉽게도 우리 대학을 들어오셔도, 전 내년에 졸업합니다만…
하지만 아직 막 고 3이 된 참이니까, 좀 더 수능 점수를 올려서 수도권내 대학으로 가시기를 권장합니다!
힘내서 공부하세요… 1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갑니다 ^^ 랄까, 8개월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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